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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Feb 16. 2022

어차피 쉬운 인생이란 없으니까 (뒤)

 비척이며 가는 길이라고 해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북극성은 필요했다. 쉼 없이 자라나는 아이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결국 되어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하면 양육의 최종 목표는 어디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고 작은 파고를 넘고 때로 어느 섬에서 쉬어가거나 어쩌면 먼 길을 돌아갈지라도 북극성을 볼 수만 있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야 할까,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야 할까. 내 아이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까.


 내 생각은 때로 나를 고상한 사람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의 나는 욕심을 옆구리에 감춰둔 위선자였다. 그 위선이란 것이 속성상 유치하기까지 하여 때때로 부끄러웠다. 육아서적을 보면 시기마다 아이가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태어난 지 4개월 전후로 뒤집기를 하고, 12개월쯤 되면 아장아장 걷는다. 두 돌이 되기 전 말로 간단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그즈음 기저귀를 떼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 첫째는 모든 게 조금씩 늦어 조급한 심정이 있었다. 세 돌 무렵 영유아 건강검진을 가기 위해 발달 선별지를 작성하다가 잘 놀고 있던 아이를 무턱대고 불러 앉혔다.


 "여기에다 동그라미 그려봐. 너 이름은 뭐지? 이 중에서 가장 큰 건 뭐야?"


 인지, 언어, 사회성 등 아이의 발달 정도를 알아보는 항목에는 '잘할 수 있다'에서 '전혀 할 수 없다'까지 네 가지 보기가 있고, 아이의 상태에 따라 체크를 해야 했다. 우습게도 모든 항목에 '잘할 수 있다'와 '할 수 있다'만 체크하기를 바랐다. 평균보다,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해내기를, 빠르지는 않더라도 뒤쳐지지는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컸다. 이제 막 자신만의 레이스에 올라선 아이에게. 고작 영유아 검진에서 말이다. 아이는 또 다른 나였고, 아이의 능력은 내가 능력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보였다.


 36개월까지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을 거야. 내가 널 키울 거야. 정서의 안정이 제일 중요하니까.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게 해 줄게. 나는 네가 올바른 가치관 안에서 자랐으면 좋겠어.

 

 가정보육. 홈스쿨링.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방법만 달랐을 뿐 결국 내가 바라는 건 '뛰어난 내 자식'이었다. 내 안에서부터 싸워야 했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끗 차이로 부모의 욕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매번 상기시켜야 했다. 내가 나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흔들리며 걷는 이 길이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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