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 Feb 24. 2022

아침을 기다리는 아이

 오후 1시 반 딸아이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 마당 앞으로 갔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엄마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지만 결국 눈인사만 나눴다. 누군가 마주치면 말을 걸까 봐 내 눈은 함께 온 막내만을 쫓고 있었다. 하원 후 어떤 아이들은 어울려 가까운 단지 놀이터로 모였다. 또 다른 무리들은 태권도장으로 또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등으로 선생님 손을 잡고 흩어졌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도 시간이 되면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매일 끝까지 놀이터에 남아 노는 건 우리 아이뿐이었다. 아직 유치원생인데 시간 가득 놀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홀로 바쁘지 않은 우리 아이는 어딘가 잘못되어 보였다.


 "학습지는 어떤 거 해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놀이터 한편에 앉아 있으면 의례 그런 질문이 들려왔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 성격, 가족 여행 다녀온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도 초등학교 입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너무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키는 것에는 사회적 죄의식 같은 것이 있어서 영어나 수학 학원에 보내는 건 삼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학습지까지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나 보다.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 본 부모들은 교과서가 너무 어렵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곱 살 아이들은 한글은 진즉 깨치고 운동, 음악, 미술, 영어는 조금씩은 배우고 있었으며 덧셈 뺄셈 정도는 쉽사리 했다. 홈스쿨을 염두하고 있던 나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을 밖에. 남들 다 하는 걱정에서 한 발 떨어진 외딴섬처럼 보이긴 싫었기 때문인데, 이미 외딴섬이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 건강하기만 하면 돼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겐 그런 넉넉한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내 아이가 누구보다도 뛰어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아닐까 불안감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때마다 육아서적과 교육책, 정신의학박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우리 집 거실 한쪽은 TV가 아닌, 책을 두둑이 쌓아놓은 책장이 서있다. 아이가 6개월이 되던 무렵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줬다. 눈길이 닿고 손이 닿을 수 있는 자리에 아이의 책을 두었다. 다른 것을 하지 않는 만큼 책 읽기에는 집중했다. 똑같은 책을 한 번에 열 번씩 읽어 달라고 하더라도 - 무척 입이 아프고 지겹더라도 - 싫다고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들이고 사회성을 익히는 것 외에 싫다는 걸 억지로 하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시키면 군말 없이 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억지로 했다면 사달이 났을 거다. 나는 체력이 좋고 바지런한 엄마가 아니다. 엄마표 놀이 같은 것도 거의 해본 적 없다. 때때로 솜씨 좋은 엄마들의 엄마표 놀이를 보면 아이에게 괜시리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엄마 밑에서 커가는 장점도 있겠지. 적어도 자기 주도성은 길러질거야.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는 것만으로 한계를 한참 벗어난 나는 어쩔 수 없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내가 놀아주지 않아도, 매일 내게 와서 '심심하다'고 외쳐대도, 아이는 하루가 모자라게 놀았다. 더 놀아야 하는데 밤이 와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아침을 기다리는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행복한 하루였어!"




  

매거진의 이전글 어차피 쉬운 인생이란 없으니까 (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