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보호병동 출입문은 지문 인증을 해야 통과할 수 있는 육중한 철문이었는데, 문이 등 뒤에서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차단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전날 선배에게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해 열심히 들었고 밤이 늦도록 공부했지만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정신건강의학과 1년차의 첫날, 선배들이 퇴원 계획을 짜 두고 떠난 환자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내가 담당해야 할 환자는 한 명이었다. 의사가 되어서 내 이름을 걸고 담당하게 된 첫 환자였다. A씨는 43세 남성으로, 진단명은 조현병이었다.
병동 스테이션을 나와서 환자와 첫 면담을 하러 가기까지는 시간이 30분도 넘게 걸렸다. 가서 뭐라고 말하지? 자기소개를 먼저 해야겠지? 초짜 의사인 걸 들켜서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조현병 환자를 처음 보는데, 무섭지 않을까? 인턴 시절에 술기가 잘 되지 않았을 때처럼 동기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먼저 면담을 시작한 동기 형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결국은 병실로 향했다. 나의 첫 환자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괜찮은 인사가 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평범하게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진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을 생각하면, 조현병이라는 병명을 들으면, 첫 출근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이어서 떠오르게 될 환자와의 대면이었다. 나보다 10살도 더 많은 A씨는 중키에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내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성공적인 첫 인사를 완료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조현병 진단명을 가지고 있는 환자와의 대면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두 번째로, 환자의 진료가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생각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나에게 환자를 인계해 준 선배는 입원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A씨에게 ‘일단 필요한 검사들을 하자’고 이야기를 해둔 터였다. 조현병 환자는 적지 않은 경우 자신이 질병을 가지고 있고 현재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을 ‘병식이 없다’고 표현하는데, 병식이 없던 A씨는 자신이 정신건강의학과 보호병동에 입원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입원 당시 A씨와 보호자에게 현재 상태와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하였지만 A씨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초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선배는 일단 검사를 먼저 진행하자는 애매한 말로 환자를 안정시켜 둔 것이었다.
A씨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수첩에 글을 쓰면서 보냈다. 병실에 있지 않을 때는 병동 복도를 거닐었는데, 허공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아니, A씨의 혼잣말은 단순한 혼잣말이라기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처럼 보였다. A씨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누가 말을 거는지 물었지만 A씨는 그럴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에요, 아무 것도.” 하고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다. 별 일 없이 일 주일 정도가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A씨와 친해져 갔다. 입원 환경에 익숙해져서인지, 혹은 나와 서로 경계심을 조금씩 풀었기 때문인지, A씨는 이제 혼잣말을 그리 감추고 싶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병동 거실 소파에 앉아 잡담을 하던 중간중간 A씨는 예전 같으면 나를 피해서 병실로 들어가버렸을 타이밍에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허공을 보며 대꾸했다. 잘 들어 보면, A씨의 대꾸는 주로 어딘가를 향하는 욕설이었다. 며칠을 집요하게 물어본 끝에 왜 욕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A씨에게는 이전 직장에서 근무하던 상사가 A씨에게 하는 욕설이 들려오고 있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상사는 자신과 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A씨의 험담을 하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상사가 A씨에게 하는 행동의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져 갔다. 병원에 입원을 하기 직전에는(왜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사가 고용한 것이 틀림없는 흥신소 직원 같은 사람들이 A씨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A씨의 휴대전화, 컴퓨터, TV 등 전자제품을 통해 A씨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전자제품을 모두 버리거나 부쉈지만 상사는 이제 A씨에게 전파를 통해서 메시지를 보내 오고 있었다. A씨는 퇴원하는 대로 상사를 찾아가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A씨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서 정신적인 어려움이 생긴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그래도 지난 한 주 동안의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흥신소 직원, 감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무엇인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고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전파를 통한 메시지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교과서에서 보던 망상이 이런 것이구나.
전파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지금 A씨의 귀에 들리는 것은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데 몇 시간을 보냈다. 병동에 있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한다고, 이것은 당신의 질병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A씨는 납득하지 못했다, 아니 납득하지 않았다. 귀에 똑똑히 들리고 있는 것을 왜 가짜라고 이야기하는지 A씨는 답답하게 생각했고 내가 억지를 쓰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둘 다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서로의 주장만을 반복했고 마지막에 가서는 언성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교과서에서는 망상을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서 설득되지 않는 잘못된 사고 체계로 정의하며, 환자는 이것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반박이 환자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햇병아리 의사의 패기로 가득했던 나는 열과 성을 다하면 될 거라고 믿으며 교과서가 틀렸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패배했다. “네가 뭘 안다고! 네가 그러고도 의사야?”라는 말과 함께 그 동안 우리 사이에 형성되었던 신뢰 관계는 모두 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