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게시한 "조현병, M/43" 글에서 이어집니다.
망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로, 매일의 출근길이 너무도 무거웠다. A씨는 이제 내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A씨의 입장에서는 감추고 있던 내용들을 내게 믿고 알려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한 내용을 믿어 주지는 못할망정 정면에서 반박했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환자들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 망상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많은 마찰을 빚곤 한다. 때문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답답함, 나아가서는 평생 이해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 말씀 치고 틀린 것이 없다. 망상은 그 사실 여부가 아니라 환자가 망상에 대해 가지는 감정에 주의해야 한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은 옳았다.
고민 끝에 A씨의 이런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깨진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특히나 망상이 아직 공고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돌파구는 다른 방향에서 다가왔다.
심리치료, 상담 등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신의학에서 약물의 치료적 효과가 차지하는 역할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운동 중 부상의 치료 과정에 비유하자면 심리적 치료가 담당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로의 교정과 깁스이다. 약물적 치료에 해당하는 것은 수술, 진통제, 근이완제의 역할이다. 심각한 상태에서의 근본적 치료는 당연히 약물치료가 중심이 된다. A씨와 나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는 동안 A씨가 꾸준히 복용한 약물은 서서히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혼잣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몇 번씩 혼잣말을 하던 A씨였기 때문에 변화는 극적이었다. 혼잣말이 줄었다는 것은 A씨에게만 들리는 욕설, 환청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였다. 욕설이 덜 들리니 기분이 뒤따라서 편안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조금씩 편안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A씨는 일전에 내게 소리질렀던 것을 사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일이 아니었는데(큰 일이 아니라니! A씨에게 망상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과 같았다. A씨는 실제로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내게 크게 화를 냈었다.) 지나친 반응을 했던 것 같다고. 그 때 깨달았다. A씨가 호전되고 있구나.
그 때부터의 치료 과정은 순조로웠다. 치료를 통해 망상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긴 때는 논리적인 반박을 통해 잘못된 믿음을 더 빠르게 깨나갈 수 있었다. 퇴원을 앞둔 때 A씨는 망상의 내용을 일부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고(증상이 심할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쁜 꿈을 꾼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A씨는 퇴원 후 다른 직장에 취직하여 편안히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의 첫 환자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항상 궁금하다. 퇴원 후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우연히 그가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몹시도 기분이 좋았었다.
조현병을 진단받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질병의 예후에 대해 크게 걱정한다. 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의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A씨의 이야기를 꺼낸다. 경과는 물론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조현병이 있어도 충분히 잘 기능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병동에서 함께 지냈던 분의 TV 인터뷰를 보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