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치료와 발병 기전에 대한 정보들이 많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강박증이 어떤 질병인지 알아보기 위해 오늘은 전래 동화를 하나 풀어 보려 합니다.
조선 건국, 고려 말기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국가에서는 스님들을 잡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몸을 피하려 시골 어느 농사꾼의 집에 숨어들었습니다. 스님은 벽장 속에서 농부가 가져다 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던 스님은 남는 밥풀을 가지고 동물을 빚었습니다. 스님의 도력이 보통이 아니었던지, 이 밥풀로 만든 동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동물은 쇠붙이를 먹이로 삼았습니다. 벽장 안에 있던 바늘, 고철 조각을 먹고 몸집을 키웠습니다.
상황이 안정되자 스님은 농부에게 쪽지를 남기고 문제가 생기면 열어볼 것을 당부하며 떠났습니다. 스님이 떠나자 동물은 밖으로 나와 집 안에 있던 쇠로 된 물건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고 이내 괴물이 되었습니다. 가마솥과 농기구, 근방의 쇠붙이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관에서는 군사를 파견해 괴물을 죽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창으로 찌르면 창날을 먹고, 화살을 쏘면 화살촉을 먹으며 더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는 이 괴물을 죽이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방을 붙이기에 이르렀습니다. 농부가 스님의 쪽지를 떠올리고 열어보자 불을 사용해야만 죽일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괴물에게 불을 지르자 괴물은 그 동안 먹은 쇠붙이를 남기고 사라졌고, 농부는 큰 상을 받았습니다. 이 괴물을 ‘어떻게 해도 죽일 수 없다’ 해서 불가살(不可殺), 혹은 ‘불로 죽일 수 있다’ 해서 불(火) 가살(可殺) 이라고 불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강박증에 대한 글에서 갑자기 전래동화라니, 뜬금없는 전개가 아닐 수 없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강박증이라는 질병은 이 불가살이를 꼭 닮아 있습니다.
왠지 모를 찝찝함,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강박증 환자는 강박 행동으로 이를 중화하려 합니다. 가스 불이 제대로 꺼졌는지 불안해서 수십 번 확인합니다. 손이 오염된 것 같으면 한 시간씩 손을 씻고 확인하기를 반복해야 하지요. 환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강박 행동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직관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박증은 불가살이를 닮아, 불가살이를 공격하려는 – 불안감을 없애려는 – 시도들을 먹고 자랍니다. 불가살이가 창날을 먹고 더 커졌듯, 강박증에서 찝찝함을 줄여 보려는 시도들은 오히려 질병을 더 악화시키곤 합니다.
강박증의 치료에 대한 글들을 읽어 보면 크게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의 두 가지 방향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강박 행동을 참는 것은 불가살이를 공격하지 않음으로써 불가살이를, 강박증을 굶겨 죽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입니다. 괴물이 약할 때에는 굶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괴물이 아주 강한 상태라면, 굶겨서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다가는 마을이 모두 초토화되어 버리겠지요. 여기에서 약물치료가 등장합니다. 약물치료는 불가살이에게 불을 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치료가 병행될 때 불가살이를, 강박증을 완전히 없앨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