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야, 좋은 인연이란 뜻이야

기념일은 기념할 만하다.

by 단짠
기념일은 기념할 만하다


기념일이 참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한글날 등 기념할 날이 많아서 다행이다. 기념일 없이 까만 날만 있었다면, 우리는 365일 출근하며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끝내 로봇으로 변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념일은 얼마나 특별한 하루인가. 물론 휴식과 유희는 기념일이 주는 옵션이지 본편이 아니다.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답게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잊으면 안 되는 가치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하게 하기 때문이다. 잊지 않아야 할 일, 기억해야 할 일, 감사할 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존재도 의미 있게 된다.


짝퉁 기념일이 인기 있지만, 찐은 영원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기념일이 이상해지고 있다.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00 날들이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짝퉁 기념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며 기념일이란 이름에 숟가락을 얹고 있어서, 가짜 때문에 진짜마저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왜 사야 하는 줄도 모르고, '00 데이'라서 초콜릿을 대량 구매할 때는 `어이가 없어`를 외치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의미를 지닌 기념일이 유사 기념일의 인기에 밀려 무늬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스승의 날은 이미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는 홍길동처럼, 스승의 날을 스승의 날이라 부를 수가 없다.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야.`라고 의미 부여하는 티를 내면 '꼰대'라고 불릴 거다. 언젠가는 '스승과 제자가 어떤 사이야?'라고 역사 단어 풀이를 하게 되진 않을까?`- 서글픈 상상마저 해본다. 그러나 나는 `스승과 제자`의 미래를 믿는다. 유사 기념일이 아무리 인기 있어도, 인기는 유행 따라 변할 뿐이지만, 진짜 가치를 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제자고 나는 스승이야, 그건 좋은 인연이란 뜻이야.


현실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끊임없이 변해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일을 기념하며 살아갈 것이다. 잠시 뒤틀릴 순 있어도 사라져서는 안 되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상에 좋은 물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메말라 보여도 아직 살만한 것 같다. 오늘도 그런 물줄기를 느낀 하루였다. 수업을 마친 4학년 서연이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손바닥 크기로 접은 종이를 건넸다.

"뭔데?"
하얀 종이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편지를 펼치는데, 이미 서연이는 사라졌고 현관문 닫는 소리가 났다.
"말 못 할 문제가 있나?"

내심 걱정하면서 종이를 펼치니 분홍 꽃 테두리에 둘러싸인 손편지가 보였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손편지를 읽으니 마음속에서 기쁨이 몽글몽글하게 피었다. 그러다 울컥 눈물이 났다. 꾸밈없고 진솔한 마음으로 쓴 편지는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어린 제자 서연이가 움츠린 스승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가까이 있던 다른 제자가 그 모습을 보더니 놀래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울어요? 왜요?"

어찌나 큰 소리로 물었는지, 그 시간에 학원에 있던 모든 제자가 몰려와 나를 에워쌌다. 운다고 놀리는 아이부터, 누가 그랬냐고 대신 싸워줄 듯이 씩씩대는 아이까지 반응들이 다양했다. 대부분은 방청객 모드였다. 난 창피하지 않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손편지를 쓰는 제자와 손편지에 우는 스승.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난 누군가 '스승과 제자는 어떤 사이야?'하고 묻는다면 이젠 말할 수 있다.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야.` 그건 좋은 인연이란 뜻이야.

너는 내게 자부심을 선물했어.


다음날은 스승의 날이었고, 중 고등부 수업이 있었다. 4시가 되자 학생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은 교실로 바로 들어가는데, 현수가 원장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이거요."

"어머 예뻐라, 아주 예뻐 샘 감동했어. 고마워."

책상 위에 빨간 카네이션을 놓아준 것이다. 잘생긴 녀석이 센스까지 잘생겼다. 문득, 나는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한 적이 있나? 돌아보니 없었다. 나는 기념할 줄 모르는 제자였나? 부끄럽게도 나는 스승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가 초등학교 선생이셨는데도 학교 선생님이 무섭기만 했다. 엄마가 엄격하셔서 다른 선생님들도 너무 멀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나는 영어강사가 되면서 다짐했다. '가르치는 것보다 사랑하겠다.`라고. 르치기 위해 비난하고 야단치면 안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실천해왔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는 한 가지는 없고 두 가지는 있다. 꾸중은 없고, 칭찬과 사랑은 있다. 이번 스승의 날에 받은 선물은 `잘하고 있어`라는 위로와 응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기념일을 만들어 기념하나 보다. 나도 감사와 응원을 전할 누군가를 놓치고 있지 않은 지 둘러봐야겠다. 내게 `자부심`을 선물한 제자의 마음을 복사해서 또 다른 나에게 전달하고 싶다. 좋은 건 릴레이 돼야 하니까. 우리 좋은 건 이어달리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