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청춘의 민낯을 헤아리다

by 단짠

1. 나에게 하루키는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청춘의 끝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사람들이 유행처럼 하루키를 읽었다. 나도 하루키 작가의 소설 한 권을 읽고 매혹적이라고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책 제목도 내용도 기억 못 한다. 어쩌면 조작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책 좀 읽는 사람이면 읽어야 할 책 아니야?’라고 물으면, 안 읽었다고 답하기 민망할 것 같아서 자리 잡은 기억 말이다. 20대부터 책을 사기만 했지 읽진 않았지만, 제법 독서력이 있었던 10대를 자부심 있어 한 내겐 독서 부심이 있었으니까.


드디어 유명한 작가 하루키를 만났다. 12개월 동안 12권의 하루키 작품을 읽는 독서 모임 [하루키 연대기]에 가입한 덕분에 첫 책으로 선정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을 수 있었다. ‘시대를 관통하는 작가인데, 그 작가 책을 안 읽어?’ 나에게 이런 부채감을 준 작가 하루키! 그와 정식으로 인사를 해서 기쁘다


2 나른함이 고민된다면, 바람의 노래를 듣는 중일 지도


청춘의 권태로움을 겪고 있는 그래서 빈둥거리고 있는 자신이 답답한 사람. ‘뭔가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고 뭔가에 최선을 다하고 아무튼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나른하지?’ 하는 20대한테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적어도 이 소설은 20대의 특징 중 권태로움과 나른함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나른한 거야. 그러니 지금 너의 빈둥거림이 비정상적이라는 불안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아.”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내가 이 소설에서 느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청춘과 나른함 사이 그리고 빚어짐의 시간.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무엇을 알아채길 바랐을까? 내게 중요한 건 작가의 의도가 아닌 내가 받아들인 그 자체이다. 난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내 청춘의 권태로움과 빈둥거림이 그럴 만하다는 걸 이해받았다.


청춘은 나른한 거야. 그러니 지금 너의 빈둥거림이
비정상적이라는 불안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아


3. 청춘의 민낯을 헤아리다


‘너, 마음에 안 들어. 딱 재수 없어.’라고 세 장쯤 읽고 생각했다. 여성과 성 경험을 바탕으로 연애를 추억할 때도 재수 없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무튼, 비아냥거려주고 싶은 녀석이야.’ 하며 읽었다. 주인공이 사귄 여자 중 한 여자가 ‘너 징그러운 놈’이라고 했을 때, 내가 왜 이 주인공한테 매력을 못 느꼈는지 알았다. 솔직하지 않아서였다. 괜찮은 사람인 척하면서 일탈하는 척도 같이하는 사람이라서 이 주인공이 싫었던 거다. 괜찮은 사람이던가. 일탈하던가. 한쪽에 솔직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인데 일탈도 할 줄 알아서 나는 더 매력적이야.'라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허세. 아니, 비겁함이 싫다. 자신에게도 친구 쥐에게도 그가 만난 여자들에게도 그는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생도 솔직하지 못하다. 거기서부터 꼬여버린 그는 (20대의 나는) 실제 자신을 잃어버려서 권태롭고 나른하다. 의미가 있는 세상인데 아직은 무의미해서 빈둥거리게 된다. 음악과 맥주와 연애로 채워가지만, 그가 원하는 본격적인 인생을 시작할 단서가 부족하다. 그래서 청춘인가 보다. 그래서 나도 여름휴가철 뜨거운 햇볕 아래 수영은 안 하고 파라솔 아래서 바다만 바라보듯 청춘을 보냈나 보다.


자신에게도 친구 쥐에게도 그가 만난 여자들에게도
그는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생도 솔직하지 못하다.


4. 막 주무르는 시기, 청춘은 완성을 위한 반죽의 시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내를 만나고 또 함께 다정히 오늘과 미래를 설계하는 걸 보면서 소설 전체를 이끈 정체된 분위기가 진행형으로 반전해서 홀가분했다. 마치 내가 30대가 되며 살아가는 재미와 치열함을 동시에 누렸던 것처럼.


20대 초라는 시기는 완성되지 않은 점토. 도자기를 만들 때 먼저 점토를 막 주무르는 시기였다. 10대까지는 교육이라는 환경과 부모라는 틀 안에서 빚어지지만 20살이 되면 비로소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나에 의해서 도자기가 빚어지게 된다. 처음으로 오로지 내가 나를 빚는 20살의 첫걸음은 거창하고 활기찰 것 같지만, 처음 자기 발로 세상에 나온 낯섦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다가 손을 놓으면 갑자기 튕겨 나가 버리듯 말이다. 본인도 모르는 곳으로 튕겨졌다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 20대 청춘이다.


처음으로 오로지 내가 나를 빚는 20살의 첫걸음은 거창하고 활기찰 것 같지만, 처음 자기 발로 세상에 나온 낯섦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단짠 -


5. 나에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들려준 노래는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거실의 커다란 탁자에 앉았다. 그날따라 마호가니 원목 탁자와 의자는 티브이를 보기 위해 소파 대신 놓여있기엔 아깝게 여겨졌다. 처음으로 노트북을 가져와서 탁자에 놓았다. 잘 어울렸다. 그럼 이제, 뭐 하지?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러다 얼마 전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올랐고.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주네.’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내가 팝송을 즐겨 듣던 시절 소녀들의 이야기를 써볼까?’


그렇게 뜬금없이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원고지 70매가량의 첫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소설 작법이나 글쓰기 관련 책을 읽은 적도 없이. 학원 가정 통신문만 쓰다가, 머릿속에 처음 본 소녀들이 나타나서 그냥 썼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가 됐다. 아직은 미완이지만 소설가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쩌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니 반갑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그도 첫 소설에서 완성된 건 아니잖아? 소설은 소설가와 함께 진화되니까. 내가 진화되면서 내 소설도 완성될 것이다.


소설은 소설가와 함께 진화되니까.
내가 진화되면서 내 소설도 완성돼갈 것이다.


6. 무라카미 하루키가 궁금해진 이유


소설에서 일본이 배경이 아닌가? 주인공이 외국 사람인가? 여기가 미국 어디 휴양지인가? 하면서 읽었다.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 사람이 주인공인데 그가 속한 국가나 문화 같은 규정된 틀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국적도 문화도 불분명한 점이 '내가 속한 곳과 다른 세계 예술가(동경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무엇에도 규정되지 않으려는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궁금해졌다.

내가 궁금해진 작가 하루키의 세계가 전 세계 독자 또한 매혹시킨 건 아닐까? 이 또한 궁금하다.

하루키 작가의 책을 읽는 12개월 동안 그 궁금증을 스스로 알아갈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당신이 궁금해요. 당신 책을 더 재밌게 읽을 것 같아요. 우리 언제 만나요. 소설가 대 소설가로.


*대작가를 향한 동경의 마음을 담은 소설가 대 소설가입니다. 대작가와의 만남은 우선 독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