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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Jul 05. 2022

뜻밖에 우리

3. 성아와 연주 2

"네가 못 생겨서 그런 걸 왜 나한테 지랄이야?"

"꼬리 쳤잖아 이년아."

"봤어? 봤냐고?"


머리카락이 통째로 뽑혀 나갈 듯이 움켜쥔 손을 따라 공중으로 솟아 있었다. 발사를 대기하는 괴생체 같아 보였다. 보라 리본을 맨 예쁜 소녀에서 괴생명체가 된 아이 이름이 성아다. 싸움을 바라보며 싸움에 얽힌 사연을 생중계하는 아이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알게 됐다.

그 성아라는 아이가 마지막 단어 '봤냐고'를 외칠 땐 식당 안 모든 학생을 압도시켰다. 그 한 마디가 천장을 뚫고 발사됐기 때문이다.


"내가 철원이 꼬시는 거 본 사람?"


몇 대 얻어맞은 듯 보이는 얼굴인데도 성아는 기세가 등등했고, 그녀의 괴성에 압도된 학생들을 찬찬히 둘러보기까지 했다. 마치 정답을 아는 증인을 찾고 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 눈이 강렬해서 아이들은 증인으로 채택이 될까 봐 웅성거림마저 멈췄다. 전세는 역전됐다. 싸움을 말리든 구경하든 아니,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줬던 아이마저도 침을 꼴딱 삼키는 표정으로 그녀가 지목할 대상을 숨죽여 지켜보는 상황이 돼버렸다. 식당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좌에서 우로 천천히.

나를 스쳐 오른쪽 방향으로 가던 시선이 급후진 해서 나와 마주쳤다.


'아뿔싸. 이젠 내가 발사될 차례인가.'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땀 흐르는 소리까지 들릴 듯 한 침묵 속에서 성아가 물었다.


"넌 알잖아. 사실대로 말해. 내가 철원이한테 꼬리 쳤어 안 쳤어?"


'이름도 모르는데, 뭘 안 다는 거지?' 어이가 없었지만 무엇이 됐든 답해야 했다. 두 미친년 싸움이 총구를 내게로 튼 것이다. 약자는 어디서나 티가 나는 가 보다. 누구도 억울함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자를 알아보는 야비한 시선들.


성아는 다시 물었다.

"봤어? 안 봤어?"

"안 봤어"

"아니, 크게 말해. 네가 아는 걸 말하라고! 내가 철원이 꼬셨어, 안 꼬셨어? 안 했지?"

"응. 안 했어."


성아의 다그침에 나도 모르게 비명처럼 '안 했어'를 외쳤다. 마치 진실을 알아달라는 듯이. 그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성아는 깔깔깔 웃어댔다.


"하하하 하하하"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오후가 지나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벌어진 일을 교실 곳곳에서 수군거렸다. 그중 몇 명은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은 듯 쳐다봤고, 한 둘은 '성아랑 언제부터 친했어?'라고 물었다. 내게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 나에게 성아를 궁금해했다.

'성아, 못 된 계집애. 왜 날 끌어들여.'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 대해 잘 못 말을 꺼냈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까 봐 속으로만 욕할 뿐, 말을 아꼈다.

고개를 숙이기도 벅찼던 내게 아이들의 궁금한 시선까지 더해지니 고개가 더 무거워서 땅끝까지 떨궈질 것 같았다. 아니, 발등에 고개를 얹고 교문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감쌌다.


"너지, 아까 그 얘"


내가 놀래서 걸음을 멈추자, 성아는 내 명찰을 보며 말했다.


"3반 고 연주. 음, 좋아. 쇼핑가자."


내가 안 갈 리가 없다는 듯, 자신이 제안하는 대로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앞 뒤 없이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까처럼 이번에도 나는 그녀가 하자는 대로 그녀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짝이 됐다. 성아와 단짝이 된 것만으로도 나는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 됐다. 성아가 키가 월등히 크고 조금은 더 예쁜 얼굴이어서? 옷을 잘 입고 명품을 갖고 있어서? 무슨 이유인지 성아는 또래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고, 부러운 아이와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주목받게 됐다. 내가 볼 땐 비싼 물건 빼곤 별거 없는 성아인데, 아이들은 부러워하는 것을 너머 조심스럽게 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성아는 이 모든 상황에 무심했다. 마치, 무대 위에서 청중을 바라보듯이.


그런 성아가 왜 반짝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성아와 친구가 된 것은 좋았다. 특별한 학생으로 대우받는 게 좋았으니까. 게다가 성아는 제 멋대로 하면서도 공평했다. 그녀는 감각적이었다. 눈치 없이 상처 주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 예를 들면 쇼핑을 가면, 돈이 없어서 구경조차 쭈뼛거리고 있는 내게 아무런 상처도 어떤 잘 난 티도 안 내고 자연스럽게 선물을 사주곤 했다. 고모할머니처럼 월세는 두 배로 받으면서, 반지하에 보증금 없이 살게 해 줬다고 새벽마다 잘난 티를 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 그녀는 공평했다. 그래서 성아와 친해질수록 내게도 반짝이는 좋은 것들이 늘었갔다.


그런데 그녀와 처음 쇼핑 간 날. 아니, 그녀 집에 간 난. 그날이 내 인생의 가장 치명적인 순간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강이 폐수가 되기까지 무심한 오염이 수천번 있었다는 걸 몰랐듯이, 치명적인 무심함을 몰랐다.


- 4편에서 만나요 - < 일단 쓰는 소설, 뜻밖에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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