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쑥 시간이 말을 걸어왔다.
‘수돗물을 켜 둔 채 흘려보내기만 할 거야?’
시간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세면대에서 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냥 흘러 버려지고 있었다. 배수구가 있어서 막힘조차 없이 물은 흘러가 버렸다.
내게 삶이 그랬다. 시간이 그랬다.
언제나 리필 가능한 아니, 공기처럼 당연히 있어야 해서 있을 뿐이었다.
왜 굳이 애쓰지 않아도 한결같을 것 같던 시간이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걸까?
시간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 보기로 했다.
시간이 온전한 내 소유라고?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을 자주 응용하시던 교수님을 통해 ‘시간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지만 ‘그러려니’ 하며 지나쳐버린 교훈들 가운데 하나일 뿐 ‘나만의 가치’로는 정착시키질 못했던 시간이란 명사. 그 명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사용자에 따라 적응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무한하지만 유한한 사용자 개별 맞춤 서비스였다. 모두의 것이지만 나만의 것이었고, 누구에나 허락되지만, 나만의 영역이었다.
시간이란 거대한 도시 안에 수많은 철도가 운행 중이고, 그중 한 철도 위에 ‘내 삶이란 기차’를 탑승하고 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나만의 철도가 운행 중이란 상상은 시간의 놀라운 가치를 깨닫게 했다. 모두의 것이라 여겼을 때와는 달랐다. 내 것이란 소유가 함께 데리고 온 책임감이란 녀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내 시간은 온전히 내 소유였고 내가 책임지는 거였어.’
비로소 시간이 ‘나만의 가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볼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내가 안타까워서 시간이 말을 걸어온 것이라면, 이제 시간을 잘 쓸 때가 된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시간에 대한 세 가지 궁금한 점
시간을 나의 언어로 정의하고, 나의 가치로 만들었으니 이제 중간점검을 해야 했다. 그 가치를 충분히 깨닫진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온 삶이니까 시간과의 중간 정산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날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도 카드처럼 명세서를 보내주면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통장처럼 잔액이 보인다면? 또는 카드 명세서처럼 시간의 총량과 소비 내용과 사용 한도가 보인다면? 게다가 시간 성적표가 발송되어 분기별로 인생 반 조정을 한다면?
하지만 이런 것들은 없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실체인 만큼 최대한 커질 수도 미미하게도 변신 가능한 무시무시한 존재로 사용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사용자 시선에서 시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아보기로 했고, 세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Q. 만약, 시간 명세서를 볼 수 있다면?
시간과 돈의 사용 패턴은 비슷하다
나의 시간 지출 명세는 훌륭한 소비였을까?
돈처럼 과다지출이거나 쓸데없는 지출이 많거나 저축이 안 되어 있는 상태는 아닐까? 몇 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통장 잔액이나 카드 사용 내용을 떠올려보니 소름 끼치게도 시간과 돈의 사용 패턴은 비슷했다.
내 통장이 늘 잔액이 비어있는 이유와 내 시간이 늘 흘러가 버린 이유가 같은 맥락이었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지?
어떤 생각과 행동의 습관을 반복하고 있는 거지?
내게 유익하게 살고 있었던 거야?
시간을 카드 명세서에 비추어 살펴보니 ‘쓰리 무’의 패턴을 반복해 온 것이 보였다.
‘쓰리 무’란 무계획, 무 절약, 무애 정을 말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회사의 심각한 경영상태가 밝혀지고, 구조조정을 제안받은 회장이 뒤 목을 쥐며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장면 말이다. 그 장면을 시청하고 있는 동안도 본인의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 눈치채지도 못한 사용자를 태우고 ‘시간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공포영화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안개 자욱한 배경 속에 시간이란 철로 위를 주유 경고등을 켠 채로 위태롭게 달리고 있었다.
Q. 시간 잔액이 얼마일까?
시간은 리필되지 않는다
“시간도 리필이 가능한가요?”
안타깝게도 시간 통장은 재발급이 안 된다.
쓰고 나면 없어지는 것이었다.
시간, 돈의 닮은 점이다. 사용 패턴이 같은 만큼 시간과 돈은 특성 또한 같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가치 없이 쓰고 나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유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없어진다.'를 재고 확인 후 재주문 가능한 커피믹스 정도의 [언제나 재구매 가능한 상태의 소진]으로 여겨선 안 되었다. 다시는 있지 않음, 그것이 반복되면 소멸인 거다. 소멸은 ‘희망이 줄어 들어감’, ‘생명이 사라져 감’을 의미하는 비극적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조금씩 줄어드는 상황을 이어가다가 끝내 생명의 소멸로 끝나기 때문이다.
Q 시간 사용명세서가 인생 성적표가 된다면?
시간 사용평가 vs 인생 성적표
두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시간 사용 평점을 낼 수가 있었다.
나는 평점이 어떻게 될까? 영화 감상평처럼 별 다섯 개를 만점으로 둔다면 별 두 개, 세 개를 주면 적절할까? 솔직히 두 개를 줄 수밖에 없다. 가치를 몰랐던 만큼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별 두 개일까?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지만 시간 사용 평가에 따라 인생도 평가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건 다른 차원의 질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시간보다 더 오묘한 인생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 인생도 누군가의 인생도 ‘평가’할 기준을 다 알지 못한다.
시간 통장 명세는 있어도 그것이 인생 성적표가 아닌 이유를 아직은 설명할 수 없지만, 나의 결론은 ‘인생 평점’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시간을 통해 강처럼 생명이 자라게 하라
강이 흘러가는 것은 생명을 피우고 지켜내고 키우는 신의 위대한 질서이다. 내게도 신은 강을 흐르게 하셨다.
그런데 강으로 흘러가야 할 생명의 시간을 수돗물 틀어 놓은 채로 딴짓하듯이 소모해서는 안 된다. 아무 이유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은 강이 흘러가는 것과는 다르다. 생명을 자라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각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교수님의 열변은 단지 취업, 승진과 같은 외형적인 성공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삶이란 물줄기가 시간을 타고 흘러가며 만나는 모든 순간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시간은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리는 생명력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고개를 돌려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시간이 내게 말해 주고 싶었던 건,
매 순간 살아 있고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강처럼 생명을 피우고 지키고 키우는 에너지로 살아 내기를 바라는 마음 아닐까? 생명의 강으로 흘러갈 것을 ‘나의 시간'에게 다짐해본다.
ㅡ Good Find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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