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00억이 생긴다면?

돈과의 밀당을 끝낼 수 있을까...

by 단짠

Q. 돈이 충분히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까요? 여행만 다닐까요? 가게를 낼까요? 어쩌면 돈의 제약이 없을 때 이런 상상 속 내 모습이 우리가 진짜 바라는 내 삶일지도 몰라요.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그중에서 꼭 100억이나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돈이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오늘 처음으로 ‘얼마나’란 감탄사에 빠져든다. 이 얼마나 황홀한 단어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얼마나 부자면 돈을 펑펑 써.’와 같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대단할 때 사용하는 단어, 얼마나! 100억이 바로 ‘얼마나!’라고 외치게 만드는 금액이다. 자, 이제 내 맘대로 100억을 쓰러 출발!

지금 내 통장에 100억이 있다면, 건물과 집을 사겠다. 남편이 있다면 같이 살 집을 짓고 싶은데, 혼자 살 집을 짓는 건 비효율적이라서 한강을 베란다에서 볼 수 있고, 한강 공원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는 최고급 아파트를 선택하겠다. 집을 사는데 10억을 사용하고 건물은 50억을 사용하겠다. 50억으로 어디에 어떤 건물이 가능할까? 돈을 많이 가져보지 못해서 아니, 돈을 많이 가지려 애써본 적이 없어서 부동산 시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냥 내 맘대로 상상하자.


상가와 오피스텔이 가능한 건물을 사서 1층에서 2층까지는 상가, 3층에서는 5층까지는 오피스텔로 사용하데, 보증금도 월세도 시세 반값 받고 세입자를 들이고 싶다. 오피스텔은 셰어하우스의 개념을 가졌지만, 입주 조건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 싱글 맘, 싱글 대디, 독거노인 등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으로 할 거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며 서로의 가족이 되길 바란다. 오래전부터 또 다른 가족을 꿈꿔온 난 이미 이름도 지어 났다. 사회에서 만난 또 다른 가족이란 의미를 담은 ‘또 하나의 가족, 집’을 만들고 싶다. 생활비는 상가 월세에서 나오고, 건물 운영비는 ‘또 하나의 가족, 집’에서 나오니 돈 걱정은 없을 거다. 돈 걱정 없는 삶이 내게 주어진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남은 40억은 이미 쓸 곳이 예약돼있다. 6억은 봄눈 생태도서관에 기부하고, 10억은 공연, 예술분야에서 활약하는 청년을 위해 기부하고, 3억은 세계 여행에 쓰고, 1억은 가구와 새 차 구입에 쓰고, 20억은 남동생 줄 거다. 남동생과 같은 건물에 살면 더 좋겠다.

아들에게는? 아들에게 인생을 모험할 충분한 기회를 주고 싶다. 모험에 돈은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니까 주고 싶지만. 안 주는 게 맞다.

나의 100억은 안정적인 투자와 적당한 소비 그리고 나눔을 통해 ‘돈과 화해’하게 할 돈이다.

신나게 돈 100억을 쓰는데 1분도 안 결렸다.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실제론 없는데 상상한다는 게 말이다. 얼마나.

상상만으론 가질 수도 없는데 괜한 100억을 쓴 걸까? 그러면 어떤가! 1분간 즐거웠다. 1분간 즐겁기가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일을 방금 해냈으니 오늘의 몫으론 충분하다. 100억 가진 사람처럼 돈을 쓰진 못하지만 100억 가진 사람처럼 돈에 여유 있을 순 있으니까. 차이는 소유를 통해서가 아니고 절제와 절약을 통해서겠지만. (나도 소유하고 싶다고 속에서 외치는 중) 중요한 건 풍요로운 삶이면 되는 것 아닐까? 가져서 여유 있는 삶이 더 좋겠지만, 가져서 고단할 수도 있으니까. 난 지금도 충분하게 좋다. 열심히 출근하게 하는 쫄깃쫄깃한 통장 잔액은 밀당의 고수지만, 고수와 살아서 지루하진 않다.

이미 소설가처럼 글 쓰고, 이미 100억 가진 사람처럼 나누며 살다 보면 밀당의 고수가 날 더 사랑하게 될 테니까.


백억으로 시작해서 내일도 성실하게 출근하기로 끝났지만, 지금의 내 삶이 썩 마음에 든다.




* 이 질문은 [컨셉진] 잡지의 [인터뷰 프로젝트] 질문 중 하나입니다.


© introspectivedsg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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