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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마 Dec 22. 2020

4만 장의 사진을
2천 장으로 정리하면 생기는 일

리빌드 액션 3: 정리를 하며 촘촘히 박힌 행복의 순간을 채굴할 것

바빴던 한 달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쉼이 찾아왔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룬 사진 정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다. 아이폰에 암염처럼 굳어 있는 3만 장에 가까운 사진들과 외장하드에 있는 1만 장의 사진들을 정리할 최적의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고 이 시점을 놓치면 나는 계속 이렇게 지우지도 못하는 사진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다녀야 했다. 가끔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뜨면 급하게 50장 100장씩을 지우곤 했는데 이미 굳어진 몇 만장의 사진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부피로 그닥 티도 나지 않았다. 찰랑찰랑 넘치는 항아리에서 겨우 물 한 바가지 퍼낸 정도랄까. 


나의 사진에는 지난 7년간의 기록들이 있었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아이 사진이 80% 이상이고 10%는 나의 사진, 나머지 10%는 참 별 볼일 없는 음식 사진과 좋은 글귀나 책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언젠가는 사야지.. 했던 신발이나 옷, 책들도 있었다. 업무와 관련된 사진과 파일도 제법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쓰일 일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모든 흔적들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상태로 존재했다. 


사진을 많이 저장하더라도 대부분 2-3천 장 정도인 것에 비하면... 나처럼 몇 만장의 사진을 정리하지 않고 방치한 사람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는 기겁을 했고 그런 친구의 표정을 마주하며 나는 내가 왜 이럴까? 싶었다. 살림과 청소에도 약간의 소질이 있을 만큼 정리에 강박증이 있는 성격에 비하면 나의 휴대폰은 엉망진창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폴더를 만들어서 관리하지 않은 일이 너무나 후회되었는데 그럼에도 분류해서 저장하는 일이 힘들었다. 이유는 2가지. 


<사진첩의 폴더를 만들어서 종류별로 분류하지 않은 이유 >



1. 이제 와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늦었다.

2. 너무나 많이 찍어서 일일이 분류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 일에 매일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귀차니즘으로 주 1-2회라도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결말은 엄청나게 큰일이 되어 돌아왔다. 1만 원, 2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이 -1000만 원이 되어 돌아온 기분처럼 무거웠다. 나는 왜 이 사소한 일을 그간 미뤄왔던 것일까? 



딱히 행복하지 않았던 지난 수년간의 시간들을 마주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단 기간에 엄청나게 살이 찌면 체중계에 올라가 바뀐 앞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일이 너무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워서 체중계에 올라가 '확인사살'을 하는 일을 미루게 된다. 나의 기분이 딱 그것과 흡사했다. 지난 시간들을 눈으로 보게 되면 내 몸안에 있는 수두 바이러스가 올라와 대상포진이 되어 아플 것 같았다. 보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하며..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진을 찍었지만 소중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추억하고 싶을 만큼 우리 부부의 사진은 딱히 보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리-빌드하려면 쓰레기통 안에 보석같이 박혀 있던 진짜 행복한 순간들은 예쁜 상자에 데려와 옮겨 놓아야 했다.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얼 위해서! 뭐 때문에! 그렇게 셔터를 눌러댓들까? 나는 이 물음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 수 있는 순간들을 캐치해서 가장 행복에 가까워 보. 이. 는 사진 한 장을 건지려고 무의미한 셔터를 엄청나게 눌러댔다고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다 똑같은 표정의 사진이지만 애 엄마 눈에는 그 미묘한 차이까지도 감지할 수 있기에 똑같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사진이 엄청 많다는 것. 그것 또한 이유이다. 


가장 잘 나온 아이의 사진을 건지겠다는 욕심을 버릴 것 
불행했지만 그 가운데 촘촘히 박힌 나의 행복은 버리지 말 것 



이 2가지 원칙을 생각하며 하루에 3시간씩 3일에 걸쳐서 작정을 하고 정리했다. 


나의 사진과 아이의 사진으로 구분하고... 아이의 사진은 6개의 폴더를 만들어서 시기별로 구분했다. 


사진 정리를 하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7-8년이 흘렀을까? 싶은데 사진으로 기록된 하루하루 촘촘한 기록을 보니 참 오랜 시간 매일매일을 내가 살아냈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더디다고 했다. 알쓸신잡에서 어렴풋이 본 내용을 더듬어 보자면, 매일매일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일들이 많아야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태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이들일수록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새롭기 때문에 한 달, 일 년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고 어른들은 비슷비슷한 고만고만한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고 한다.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찾으며 불행 속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행복의 순간을 캐치했다. 아이의 아빠와 기러기 부부가 되고...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두 돌 전에 고열로 늦은 밤 병원에 갔던 그날의 사진이 있었다. 나 혼자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아기띠에 둘러업고 병원에 갔다. 수액을 맞는 아이는 너무나 아파했고 바늘을 꽂으며 오열을 하다가 내 옷과 머리에 구토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닦아야 할지... 뭐부터 챙겨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사람 한 명의 손이 너무나 간절했지만 혼자였던 한밤 중 소아과에서의 일들, 지금 생각하면 별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터라 수많은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도 고비의 순간들을 잘 넘어온 내가 더 또렸하게 보였다. 


아이의 아빠에게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라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없는 일들 

하지만 그 순간을 겪어내는 나는 혼자서 울었던 일들 


나만 아는 순간들을 보며 당시에는 혼자서 이 고통을 견디는 일이 억울했지만 다시 돌이켜 보는 지금, 그 숱한 고비를 잘 넘겨온 내가 너무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꽤 만족스러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엄마들을 보며.. 당시 육아만을 했던 내가 참 지지리도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고 하루가 마무리될 때쯤이 되면 장난감이며 옷이며 이유식기 등을 소독하고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 기록을 보니 딴에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음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책과 글을 찍은 기록은 참 많았다. 어떠한 순간이라도 책을 읽고 되고 나를 일깨우는 문장을 기록하는 일만큼은 집요하게 했던 것 같다. 


4만 장의 사진이 2천 장이 되었다. 숨이 막혀 터져 버리기 일보직전인 사진첩을 완전하게 비우는 쾌감은 방을 정리하는 그것과 비슷하면서 또 달랐다. 


소중한 나의 행복한 순간들이 깨끗하고 단정한 상자로 옮겨졌다. 아이와 나의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지난 시간은 그렇게 편집이 되어 작은 폴더에 담아졌다. 


배실 배실 웃으며 넘어가는 아이의 사진을 하나하나 옮기며 발견한 것은 아이의 웃음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없이 나를 하찮게 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나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웃음과 함께 자랐다. 


이토록 몇만 장의 웃음을 남길 만큼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면 

난 정말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리빌드 하기 위한 세 번째의 미션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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