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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마마 Mar 25. 2021

있어빌리티한 다이어리의 자기기만

[한달자기발견 - day3]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반듯 반듯 예쁜 색깔의 펜과 스티커와 그림이 그려진 워너비 다이어리에 도취되어 그렇게 기록의 행위에 집중하는 누군가를 부러워 해본적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연말과 연초에 다이어리를 사고 투두리스트 목록을 만들어 보지만 저처럼 공허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경험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적어도 저는 다이어리 난민기를 거치며 성과를 내는 것과 계획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다이어리! 정말일까요? 

저는 다이어리를 쓰면서 저와 사이가 매우매우 나빠졌고 거짓말을 하는 저를 보면서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하겠다고 적어놓고 알고리즘이 인도했다며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무심코 보낸 1시간, 아이의 교구를 검색하겠다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나도 모르게 제작 의류 입어보기 라이브를 30분동안 보고 있는 이 찝찝한 감정들이 누적될 수록 내가원하는 나와 실제 내 모습이 다른 것 같아서 불안함이 커져갔습니다. 다이어리를 쓰면 쓸 수록 지켜내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실망스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그렇게도 찍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껴. 
그들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데미안-

 




[한 달 자기발견 : 나의 일_3일차 질문]


당신은 제대로 된 중요한 일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나요? 

지금 시점에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나의 시간 자원을 어떤 곳에 얼마만큼 쓰고 있을까? 누구나 똑같이 배분되는 시간이라는 유일한 자원을 나는 얼마나 잘- 쓰고 있는 걸까? 쓰는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나는 1년 전 쯤 몇몇 블로거의 3p바인더 다이어리, 모트모트 플래너 사용에 대한 포스팅을 보고 '나도 사고싶다' , '저렇게 하고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24시간을 기록하며 쓸데 없이 지출 되는 시간은 얼마만큼인지 한 눈에 파악하는데에 아주 유용하다는 것이 구매욕구자극 포인트였다. 


10분 내지 30분 단위로 쪼개진 사각형 표를 색색깔 예쁜 형광펜으로 박스를 치며 시간 사용을 기록한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완벽하게 시각화 되는 이 다이어리는 나의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도구같았다. 

인스타그램에는 플래너 사용에 대한 기록이 80만개가 넘을 만큼 많았고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하는 데에도 이렇게 예쁘고 가지런하게 색색깔깔 정리를 어쩜 잘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게 가능할까? 공부를 하는 10분, 30분 마다 저렇게 기록을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라는 반신 반의, 나도 저렇게 예쁘게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매를 했고 기록을 했다. 3p바인더가 너무 촘촘해서 모트모트로 갈아탔다.  예쁜 형광팬도 주문했다. 요즘엔 파스텔톤 형광펜이 유행이라나 뭐라나. 






업무시간에도 다이어리를 곁에 두고 시간에 따라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적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내가 너무 바쁘고 업무에 집중을 하거나 가장 큰 결과물이 나오는 '초집중', '초몰입'을 하는 시간은 다이어리에 기록해야 한다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 

시시때때로 상사들이 부르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메일 회신을 하다보면 어어어~~~ 하다가 몇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정작 제대로 일을 했던 순간은 기록되는 것이 없었다. 당장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날에는 계획한 일들이 끊임없이 밀렸고 이를 관리 하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너무 공백이 많은 어떤 날은 계획만 가득하기도 했다. 지켜야 하는 투두 리스트와 루틴 목록은 얼마나 많은지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어느 새 나의 욕심으로 가득 살찐 계획용 다이어리 일 뿐 내 삶을 어제보다 나아지게 만드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이어리가 문제가 아니라 제 삶의 패턴과 습관이 문제임을 밝힙니다. 잘 쓰셔서 시간관리에 대한 강의를 할 만큼 유명하신 분들도 정말 많으니 참고해주세요!)



기록의 퀄리티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잠자는 3-4시간을 제외하고 그-일에만 몰두했다. 더 이상 시간을 제대로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계획하지 않아도 반드시 오늘 끝내야 할 일은 어떻게든 끝내는 나를 보면서 다이어리의 쓰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중에 시간당 강의료가 가장 비싼 나의 지인이 쓰는 심플한 다이어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생각보다 평범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이 만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업무 배분을 하고 결과물을 체크하며 많은 클라이언트와의 미팅과 전화, 메일 수신, 강의, 컨설팅에 숨막히도록 바쁠 그녀의 다이어리는 대학교때 쓰던 것과 거의 똑같았다. 


기록의 퀄리티와 시간을 잘 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이런 저런 다이어리 사용 실패기를 겪으며 제대로 알게 되었다. 기록하는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중요한 일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1순위로 두고 그냥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중요한 일 1가지만 해야 할 때는 메이크타임 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그날의 가장 중요한 일 하나를 우선적으로 하면 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 심지어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하루의 목록에 추가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방법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1) 나는 하루를 어떤 패턴으로 보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일과 주말의 일상을 생선회를 뜨듯이 완전히 해부해보겠다. 



(2)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상기 표에서 노란색으로 표시 된 부분이 다른 것은 절대 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프리랜서라 일이 있을 경우는 강의 준비에 올-인을 하지만 블로그 포스팅은 데드라인이 없고 누군가 결제하는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미루어진다. 하지만 내가 기획한 글로하는 텐 미닛 강의, 글텐강과 공감 모먼트 만큼은 나의 전문성을 확실하게 어필하고 뾰족해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해당 콘텐츠로 평생 먹고 살거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당장- 글을 쓸 수 있고 몇 시간이라도 썰 을 풀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해당 콘텐츠로 글쓰기를 해야 한다. 누적된 콘텐츠는 언제가 하게 될 강의의 소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정말 그 일을 계획 된 기간 내에 완료 하는가? 완료 했다면 이유는 무엇이고 못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강의를 위해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강의준비를 하는 것은 기간내에 완료 한다. 이것은 돈, 신뢰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안할 수 없는 일이고 하늘이 두 쪽나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어수선한 주변 상황에서도 집중에 되고 친청엄마에게 쌍욕을 먹더라도 굽신 굽신 하며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일을 한다. 나의 성과와 수입,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 앞에서는 집요하리 만큼 지켜낸다는 것은 일단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달어스 자기 발견과 같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마감시간이 주어지는 일들은 기간내에 완료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거나 덜 중요한 일들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법을 택한다. 어쨌거나 의무가 지워진 마감시간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4) 만약 중요한 일을 시간 내에 못했을 경우에 활용할 시간은 있는가? 


주말에 부모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하면 토요일/일요일 7-8시간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다. 다만 히스테릭한 말투와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5) 매일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추가된 할-일 을 하기 위해서 가용한 시간은 있는가? / 없다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가? 


잠시 멈춘 운동을 하는일이 긴급하고 중요한데 이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침 시간을 어수선하게 보내지 말고 해당 시간에 아침 걷기를 하는 것으로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3시간 동안 늘어지게 하는 밤 12시 이후의 일을 새벽으로 당길 필요가 있다. 





 행동의 완결을 하기 위해서는 기록의 행위 보다는,  중요한 일을 어떠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닥치고 하는 것이 중요함을 오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 앞에서는 어수선한 TV 소리도 들리지 않고 책상정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며, 귀에 에어팟과 버즈를 꽂지 않아도, 분홍 분홍한 로지텍 마우스와 키보드와 타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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