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불안함의 무한루프를 벗어나는 글쓰기
정말 이 길이 맞을까?
30대 후반에 정말 하고싶지 않은 고민이 찾아왔고 그렇게 내 인생에 '픽사리'가 나는 순간 나는 나를 발견하는 글을 두 달 동안 쓰는 모험을 했다.
자신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두 달 동안이나 매일매일 긴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내 나이 서른 여덟에. 그것도 많은 대학생들과 직장인,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모습을 드러내도 되는걸까? 라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자기발견 글쓰기가 오늘로 막을 내린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나는 너무 두렵다.
.
.
.
가끔씩 글들이 브런치 메인에 올라오거나 포털에 올라갈 때면 나도 모르게 읽혀지는 내 글에 대해 누군가 따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나날들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나에게서 강의를 들은 학생이, 혹은 성인들이. "지 앞길도 제대로 못찾아 가면서 우리한테 강의를 했냐"고 악플이라도 남기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아니! 강사님, 전문가이신데 이렇게 글을 쓰시면 섭외한 저희가 뭐가되요? " 라고 내가 강의를 했던 곳의 담당자들로 부터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글을 한편씩 발행할때마다 뒤통수가 늘 싸늘하다.
너도나도 전문가라고, 나를 알아봐달라고 나는 가진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고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마케팅을 해도 부족한 와중에 나의 못난 부분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너무나 위험해보인다.
그럼에도 해야만 했던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정말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나도 더 단단한 마음으로 꽉차면서 유연한 지식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고 싶고 잘하려 하면 할 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가 결국은 내 길마저 의심하게 만들고 나도 사람인지라 나의 먹고사니즘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싶다.
라는 질문에 나는 항상 '나의 불안함'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뾰족한 사람이 되고싶어요. 저는 이 것 저것 두루두루 강의하는 것 보다는 확실하게 디깅하는 저의 분야, 디깅하면서 저의 스토리로 눈에 힘을 주면서 확신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라고 답변을 해왔고 그 답변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최저시급을 벗어나보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나는 많은 일들을 스스로 벌이고 책임을 졌다. 성취감은 직장인일때 보다 훨씬 컸지만 가끔은 차라리 누가 시켜주는 일을 따박 따박 받아서 뇌를 꺼버리고 일을 해내는 것이 훨씬 쉽겠다는 생각을 할만큼 성취감과 맞먹는 스트레스가 늘 한 세트로 따라다녔다. 너무 이상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일이 싫어서 자꾸만 잘 하고 싶었다. 잘 해야한다는 생각은 일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월화수목금금금과 수면 부족이라는 생활패턴을 만들어냈다. 번아웃이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퇴사를 하는 순간.. 두 번다시는 내 인생에 이런 질문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거라고. 너무나 자신있게 사표를 던지고 환상적으로 일을 바로 갈아탔다.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처음부터 미안하다고 돈을 많이 못드리는데 해달라고 하거나 강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정을 이미 다 새롭게 개발한 상태인데 대상자가 바뀌어서 다시 처음부터 개발해야 되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그 비용에 대한 요구는 할 수 없는 지식노동자의 뼈아픈 현실에 종종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긴 한숨을 쉬면서 커피 한잔을 사러 나가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거 뭐하는 걸까?
정말 내가 이 질문만큼은 하고싶지 않은데..
30대 초반에 하는 이런 질문은 어떻게든 빨리 길을 돌리거나 1-2년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일단 35세가 넘어가면 인생은 뭐든 경험해 보는거라고 웃으며 간단하게 이야기 할 수 만은 없는 문제가 된다. 특히 나처럼 먹여살려야 할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나는 결국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말았다.
그때 마다 논문을 쓸 때 처럼 래퍼런스를 찾아다녔다. 책을 봤고... 인생의 스승님들은 또 어떻게 하시는지 곁눈질로 보기도 하고 조언도 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만들어 갈 운도 그동안 맺어놓은 인연도 다르기에 인생의 스승이 가르쳐주는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누구나 잘 되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우물은 생각보다 얕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맨틀 아래에 닿아야 할 만큼 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심해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경우도 있다. 이런 저런 장비로 우물을 파면 시간이 절약될 거라고 알려주는 팁은 매우 유의미 하지만 우물이 있는 곳의 GPS 를 알려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듯이 결국 내 자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브랜드가 되고싶어.
어떤 분야에 대해서 사람들이 강사를 섭외할 때, 아! 이 강사님 진짜 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너는 왜 강의를 해?
내가 지금 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이것밖에 없다고. 내가 뜨게질을 잘하거나 마카롱이라도 잘 구우면 만들어서 스마트스토어에도 팔면 좋겠지만 야속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많은 고민을 했던 일이 강의였고 당장 맨 몸으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면 나는 노트북만 달랑 들고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열심히 파는 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이 5년정도 이동이 되었다가 다시 처음 강단에 선 날, 초심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시작했다. 재능으로 쌀값을 오랜만에 벌어보니 월급을 받는 것과 다른 긍지가 내안에 조금씩 자랐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쌀값을 벌면 벌수록 기쁘기도 하고 나의 재능으로 언제까지 쌀을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일이 많으면 많은대로 힘들고 정말 달력에 스케줄이 텅텅 비면 비는대로 걱정스럽다.
나는 이 모호한 안개같은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디깅(Digging) 해서 뾰족해지려면 영혼과 시간을 갈아넣고 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하지 말아야 할 강의는 하지 않아야 뾰족해질 수 있다. 인플루언서 말고 브랜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not to do 를 하면서도 가치를 만들어내는 강단이 필요하기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글을 썼다.
두달 동안 나에 대한 글을 쓰며 막연했던 이 4개의 영역을 나는 조금씩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30일이 지나면 결론을 낼거라고 결론을 내서 힘든 고민을 이제 벚고 싶다고 호언장담했다.
1. 자아 수축형 사고에서 자아 확장형 목표로 전환하게 되었다. 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그럴려면 항상 자립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것은 철저히 예방초점이 활성화 된, 모든 것이 자신의 내부만 바라보는 수축된 형태의 목표로 문제해결에만 급급한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한 나만의 한 단어 "자립" 의 의미를 목적이 이끄는 목표 "타인의 자립을 돕는 사람" 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이 아마 가장 큰 수확이다.
2.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내 앞에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나의 상대적인 위치에 마음이 쫄렸고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던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불행으로 가는 직행열차 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나보다 너무 대단한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내가 합류한 것 같고 내가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을 즐겁게 쓰고 싶어서 브런치 라는 세계로 오니 출간 하신 분들, 구독자가 엄청 많으신 분들 사이에서 정말 낑낑 대며 꾸역꾸역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글을 쓰면서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나의 재능에 대해서 소중한 마음이 생겼다. 특히 이 연재를 열렬히 응원해주시는 최소유효독자들이 내가 나의 재능을 볼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3. 이 글의 연재를 끝내고 바로 하고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 나처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 많은 사람들에게 자꾸만 남의 것을 보지 말고 내 안의 셀프 멘토를 믿으며 따라 갈 수 있도록 툴킷을 만드는 일이다. 남의 것을 들여다 볼 때 마다 허탈해지는 마음과 게임에 참여조차 하고싶지 않은 좌절감을 경험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혼자서도 자신이 가진 반짝 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캐내어 넘어지면 깡통이라도 줍고 그것으로 쌀은 못사더라도 뻥튀기로 바꿔치기 할 수 있는 능력치를 키우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난다.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니 그런게 없었다. 오래전 <깜동>연출부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다. 그렇게 오직 영화로 먹고 살기로 결심한 이상, 머나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하며 살아야 그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직업과 맞지 않아도 걱정하기 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직업과 맞다고 여기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박찬욱 감독>
가만히 옷장을 열고 이 옷들로 앞으로 10년 동안 살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게 비단 경제적 결심뿐이겠는가. 앞으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을 거란 각오도 했다. 좋아하는 테니스도 칠 수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야, 너 정말 행복할 수 있니?' 스스로 물어본 거다. 그런 결정을 내린 다음부터 찾아온 생활고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언제나 나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변영주 감독>
반복을 통한 매너리즘에 빠질지언정 끝없이 지금의 자리로부터 멀리 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게 아티스트 윤리라고 생각한다. 머물거나 되돌아가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물론 가끔은 뜻대로 되지 않아 '픽사리'가 나기도 하지만 그 픽사리의 연속이 또한 인생 아닌가.
<이준익 감독>
써니야. 엄마가 30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글을 써야해.
엄마가 별을 따러가야 하는데.. 어쩌지?
써니가 10시 부터는 혼자 누워있으면 안될까?
기러기 엄마인 나는 시간이 금보다 귀하다.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글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살살 달랜다. 엄마가 오늘 별을 못따면 엄마 꼴등인데. 괜찮을까?
깜짝 놀란 써니는. 이제부터는 혼자서 잘 수 있다며 빨리 별을 따러 가라고 빨리 글을 쓰라고 나를 보내준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1등과 꼴등의 의미를 알게 된 써니는 꼴등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이 얼마나 엄마를 붙잡고 있었는지 미안한 눈빛을 보낸다.
30분 동안 폭풍 타이핑을 하고 있으면 써니가 서재로 들어온다.
" 엄마 ~ 엄마~ 같이 자면 안될까? "
같이 잘 수 없기때문에 써니를 옆에 앉혀둔다. 써니는 내 옆에서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쓴다. 6살 딸에게는 아주 늦은 취침이다. 당연히 집중이 될 리 없다. 퇴고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간신히 아이와 심리전을 벌이며 이해를 구하고 주말에 보드게임 20판을 약속하며 완결을 해보는 경험치를 쌓는다. 2번의 완결 경험, 내가 나와 약속한 일을 지켜낸 이 소중한 느낌이 나의 뿌리를 더욱 더 단단히 깊이 내려준다.
내일 부터는 같이 잘 수 있어. 써니야 : )
* 그 동안 엄마의 커리어방황기 에세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연재는 엄마뿐만 아니라 나의 진로나 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입니다.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조심스럽고 무엇하나 놓치기가 싫고 선택할 수 없을 때 저처럼 자신에 대한 글을 꼭 한번 써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물론 매일 이렇게 쓰는 몇 달 동안 정말 힘들었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찌질한 제 모습을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여행도 가져다 주지 못했던 생경한 경험과 치유로 나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지켜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