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엄마, 매운데 자꾸 땡겨!
한달에 한, 두번 6살 써니와 함께 호로록 아뜨, 아뜨, 하면서 라면을 끓여먹곤 한다. 이 날은 100g에 몇 만원 하는 투뿔 등심을 구워 먹는 날 보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 라면을 먹는 아이를 위해서는 레시피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라면이 처음인 써니를 위한 라면 레시피>
써니의 첫 라면은 오**사의 진라면 순한맛인데 스프는 절반만 넣어야 하니 다시마와 건새우로 육수를 끓여 싱거움을 잡아준다. 혹시라도 혓바닥에 불이날까 조심스러워 마지막엔 치즈 반조각과 참기름(중요) 한방울을 넣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려준다.
어린이- 순수하고 밝고 뭐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는 숭고한 단어에 라면을 붙이는건 어울리지 않을수 있지만 MSG의 감칠맛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내 방식의 육아에서) 아이가 어린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린이가 된다는 것은 아이도 나와 심리적인 거리를 둘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나는 그녀의 영역에 함부로 선을 넘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콩국수의 밍밍하고 비린맛을 싫어했던 내가 처음으로 엄마와 시장에서 콩국의 고소한 한그릇을 비운날, 어른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어른의 기준은 콩국수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듯 라면은 써니가 어린이의 세계로 향하는 것과 같다. 라면을 먹는동안 어른과 아이로 테이블에 따로 또 같이 있는 느낌이 생경하면서 좋다. 꼭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술자리를 가지며 성인으로서 첫 인정을 받는 느낌과 참 닮았으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던 본능만 있던 시기에서 매운데도 자꾸 땡기는 욕구를 함께 공유할 수 있을만큼 써니가 자랐다. “엄마, 국물 더 줘”~ 하더니 이제는 취향이 생겨서
나는 미역국 라면이 좋아
라며 카트에 슬쩍 라면봉지를 담는 아이가 되었다. 그녀의 어린이 세계를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