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결혼 5년만에 남편의 해외근무로 나의 집은 38평에서 18평으로 바뀌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14개월 써니와 나만 남은 서울생활을 보기 힘들었던 친정부모님은 옆집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여 이사를 권유하고 나와 써니의 공간으로 그곳을 바꿔놓으셨다.
18평의 작은 집에는 38평에 맞춰진 모든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서 물건을 내놓고 버리는날 20대에 가득했던 허영심도 함께 내다버렸다. 집은 20평이 줄었지만 자산의 가치는 10배 이상 줄어들게 된 허탈한 상황에서 이 집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놀이터에서 귀걸이 뒷마개를 찾는 일처럼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38평에서 지낼 때 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매일 진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평의 내 집에서 무려1825일동안 내가 누렸던 행복은 무엇일까?
아침이면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고 내 옆에는 말랑 말랑 모찌같은 볼과 여전히 아기 냄새가 폴폴 나는 써니를 쓰다듬으며 기분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코로나19에도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물풍선을 던지며 깔깔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옥상을 언제든 쓸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써니는 밤 12시에 피아노를 치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일도 가능하니 자신의 놀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 일을 하다가 돌발상황이 생기더라도 아이를 챙겨줄 수 있는 부모님과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여러 사람이 내밀어주는 손의 감사함을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나와 아이의 큰 책상은 결국 내가 살고 싶은 궁극적인 삶을 여실히 드러낸다. 좁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하나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내가 되는 것 같다. 좁아진 만큼 커진 행복의 밀도로 꾸미지 않은 나의 웃음소리를 가득 채울 수 있다면 8평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