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비로소 느끼는 것들

부모님이 작아 보이는 순간

by Teddy

지난 토요일, 나의 진급을 축하하며 가족이 모였다.

오랜만에 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웃음도 있었고, 축하도 있었고, 조카들은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 주었다.


그런데 유난히 작아 보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제 저렇게 어깨가 좁아지셨을까.

어느덧 아버지는 70대가 넘으셨고, 어머니도 곧 70을 바라본다.

그렇게 식사 하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다

마음속에서 문언가 ‘퉁‘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부모는 자식이 늙어가는 걸 모른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늙는 걸 너무 선명하게 본다
-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신경숙


몇일이 지났지만 일을 하다가 잠깐 쉬고있으면,

토요일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늘 부모님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40이 넘는 아들의 변하지 않은 기둥 처럼…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었듯

부모님도 조금씩 작아지고 계셨다.

그걸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아니, 모른 척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효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 여동생은 아이 둘을 낳아 부모님께 기쁨이 되어 드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가 없다.


아마도 와이프에게 물어 봤을 것이다.

두분은 나에게는 다른 말을 안하신다.


사실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자신이 없다.

요즘 삶이 벅차다고 느낄 때가 많다.

회사도 매년 초 구조조정이 있고, 그에 따라 열심히 하는 못습을 보여 줘야 하고…

물론 아이를 기른 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삶이 벅찰수록, 사랑도 벅차진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기 위해 먼저 버텨야 한다.
- ”아무튼, 안녕“ 중에서, 이기주


가끔은 내가 철이 없는 걸까 싶다.

다른 집들은 잘 꾸려나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걸까.

와이프 한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든가는 건, 내가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방아 들이는 일이다.
- “보통의 언어들” 중에서, 김이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모든 걸 다 해드리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부모님이 작아질수록

내가 해야 할 사랑은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