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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an 31. 2020

매너리즘에 빠질 때 찾는 사진

아, 한창기.

자상함과 엄격함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자상함과 엄격함의 결과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자상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싫어하는 엄격함은 누가 필요로 할까. 


생전에는 편집증으로까지 치부되며 깐깐한 엄격함으로 호불호가 극명으로 엇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이었던 故 한창기 선생이다. 


90년대 초반, 직장의 회장님과 초가집과 다기(茶器) 전통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창기와는 고향 친구라는 회장님은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한창기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문화재 수집에 몰두하다 병마에 쓰러져 충주호 근방에서 요양하다 생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후 한창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정 부분은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 그를 통해 배우는 삶은 엄격함이 아니었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엄격함 속에서도 일상의 전통과 문화 예술의 열정을 잃지 않았던 예술적 자상함이었다. 조정래 작가가 한창기 선생에 대하여 다음처럼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얽매임 없이 살았던 자유인이었고,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여러 가지 개성으로 스스로의 삶을 다양하게 가꾸며, 한평생 흐드러진  멋으로 살고 간 우리 시대의 최고의 멋쟁이였고 모범적 지성인이었다. 


가끔 삶의 허무에 의기소침할 때가 있다. 지리멸렬의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한 행동이 느껴지면 조용히 찾아보는 사진이 있다. 위풍당당했던 그도 얼마 남지 않았던 죽음 앞에서는 가슴 시리도록 허무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강운구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인데, 평소와는 다르게 셔터 소리를 듣고도 얼굴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한창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그분의 프로패셔널 이미지의 엄격함을 생각한다. 자상함은 게으름이 되고 엄격함은 짜증이 되는 요즘, 글에서만 반성하는 내가 나를 슬프게 한다.


한창기의 마지막 요양 모습  <강운구 사진작가>

 



순천시 낙양읍성에 위치한 <한창기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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