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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Jul 07. 2020

목가적 풍경에 누리는 자유

5도 2촌(5都2村)의 생활화

5도 2촌(5都2村)

도시인이라면 한 번쯤,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자연주의를 꿈꾼다. 그러나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시골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막상 살아보면 다시금 도시생활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차선책을 생각했다. 평일은 광주에, 주말엔 시골에 머무는 5都2村의 생활이었다.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2년여를 보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자타가 부러워했던 유유자적한 숲 속의 생활을 포기(?)하고 소로는 왜 월든을 떠났는지가 궁금했다. 책의 분위기라면 거기서 그냥 생을 마칠 것 같았는데 말이다.


1970년대 미군이 베트남戰에 손을 뗐다. 도미노 이론처럼 인도차이나 반도는 공산화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했던 크메르루주 정권의 폴 포트는 이상적인 농촌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골이 고향인 도시 사람을 시골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된 사건을 킬링필드(killing field)라고 한다.


이렇듯 농촌 사회 정착이라는 것이 국가정책이든 자의든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환경에서든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농촌생활에 기대하는 값싼 낭만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골집 서재를 꾸미다


내가 태어나고 유년의 시절을 보냈던 곳은 우주발사대가 있는 나로도다. 지금의 시골집은 나로도가 아니다. 아버지의 유년시절이 서려있고 잠들어 있는 곳이다.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시골집은 광주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소록도가 건네다 보이는 녹동항과 가깝다. 읍내와는 10여분 거리지만 고개 넘어 마을에 들어서면 적막강산의 고요가 흐르는 메마른 촌이다. 아버지 가신지 40년이 넘었다. 아버지의 친척과 지인마저 모두 북망산으로 떠나고 나니 적적하기 그지없는 시골집이 되었다.


요즘은 시골집에 오면 마음이 평온하다. 익명의 대중성이라는 자유인 지도 모르겠다. 작은 시골이라 마을 사람이 많지 않다.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드려도 아버지 성함을 말하지 않으면 나를 그저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내 고향 정체성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디아스포라의 심정을 지엽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최근 거실까지 쌓이는 책들을 정리하여 시골집으로 옮겨 도배를 새로이 하고 서재를 만들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글 쓰기에 안성맞춤인 분위기로 꾸몄다. PC와 인터넷까지 연결하니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어스름 저녁에는 마당에 숯을 피워 바비큐를 굽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나자리노가 포효할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가족 모두가 달뜬 기분이 된다. 가끔 시골집 건너편에 있는 고흥 우주천문대에서 별들을 관측하기도 한다.


20여분 거리에 있는 고흥 우주 천문대


5都2村의 생활화가 가능하기까지는 96세 노모의 영향이 크다. 모두 도시로 떠난 자식을 대신해서 텃밭을 일구며 시골집을 지켜준 노모 덕분에 이만큼의 안식처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시골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할머니(母)와 손자(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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