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텅 빈 의자를 보면 무작정 앉고 싶어 짐을 느낀다. 시골집에 왔다. 지난번 콘크리트 마당을 뚫어 비치파라솔을 설치했었는데, 그동안 깜박 잊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노모의 반가움과 함께 비치파라솔의 의자가 눈에 띈다. 어서 앉고 싶었다. 오후 2시. 이카루스의 날개를 녹여버릴 것 같은 무더위는 아니지만 오후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시골에도 도시처럼 적막이 존재한다. 갈 길 잃은 나그네처럼 나는 그 적막 속으로 빠져 든다. 내가 삿갓을 쓴다면 영락없는 김삿갓이 아니겠더냐. 이럴 때는 삿갓을 쓰고 詩라도 한 수 짓고 싶어 진다. 천상병 시인을 생각했다. 여름이 되면 시인은, 자신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을 거라면서도 선글라스 쓰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스크림도 좋아했다. 그러면서 해맑게 웃는 시인의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월은 가고 없고 이제는 내가 바랑을 대신해 외출 가방을 메고 삿갓을 대신해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스크림 대신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존재한다.
적막한 詩 한 수라도 짓겠다고 머릿속은 시구를 더듬지만 입가에는 그저 ‘썰’ 문장만이 맴돌 따름이다. 詩 또한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