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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Oct 10. 2023

춤추는 인생

직원들과 한잔의 술을 나누고 싶을 때 자주 찾아가는 곳이 있다. 호텔에서 브랜드맥주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호프집인데, 생맥주가 있고 생음악이 흐르는 깨끗하면서 아늑한 곳이다. 최근 그곳에서는 불가리아 출신의 4인조 혼성 보컬그룹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TV에서도 잠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세계를 떠돌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 나라의 문화에 젖어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보헤미안들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어보면 음악성은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코스틱 키타의 리듬이 가끔씩 끊기고 고음처리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자신들의 음악에 취해 자연스럽게 흔들어 보이는 율동이 참 보기 좋았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모습의 흥겨운 율동이 좋아 그 호프집을 자주 찾는다.     


나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춤을 잘 추는 것은 아니다. 노래 부를 때는 박자를 지킬 줄 알고, 흥겨운 리듬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나는 남 앞에 나서서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하였다. 춤추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한 때 조그만 콜라 한 병을 주문하면 생음악이 아닌 LP판으로 음악을 켜주며 DJ멘트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디스코장이 유행했었다. 대학시절 학과행사 때면 으레 선후배 간에 디스코장을 찾았지만 난 몰래 빠져나오기에 급급할 정도였다.


내가 대중가요와 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첫 직장을 다니면서였다. 직원들과 호텔 나이트를 가끔 갔었는데 바깥세상과는 단절을 하다시피한 내부구조와 경쾌한 전자음악은 청춘의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었다. 디스코음악에 맞춰 세상 모르게 흔들어 대던 모습들 속으로 나의 젊은 기운이 동화된 것이었다. 그건 젊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20대의 궁핍함을 벗어나고자 무슨 일이든 뜨거움을 강조했던 나의 몸부림이었다. 앞뒤가 생각나지 않고 그 순간의 열정을 나 홀로 폭발할 수 있는 몸부림이 나는 좋았던 것이다.


중년이 된 지금에도 가끔씩은 강렬한 전자키타와 드럼 그리고 신시사이저가 믹서된 경쾌한 음악이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기를 원한다. 사이키의 환상적 조명 속에 잠시나마 내 영혼을 잊을 수 있도록 춤을 추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동무가 보이지 않는다.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은 유튜브나 TV에서 춤사위를 감상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내가 추고 싶은 춤은 흥겨운 춤이지만, 감상하고 싶은 춤은 우리의 고전 춤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살풀이춤과 한량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장단에 맞춰 슬픔을 품어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 감정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춤사위이며, 한량춤은 과거에 오르지 못한 호반이나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추었던 춤으로 남성무의 여유로움을 넉넉한 품격으로 표현하는 춤사위라고 한다.


대학시절 때 처음으로 창극인 공옥진의 살풀이춤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세월아~ 세월아~'라는 반복적인 추임새가 곁들여진 살풀이 가락에 젖어 흐느끼는 듯한 그녀의 춤은 한 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표현할 수 없는 운명적인 고뇌와 슬픔이 무언의 춤사위만으로도 어두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감동이었다. 한량춤은 중년이 되고나서 좋아하게 된 춤사위였다. 중년의 생활 속에서 여유로움이 배어날 수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흰 도포 자락에 휩싸인 정적인 손놀림에는 남성의 의연함과 넉넉함이 물씬 풍기는 춤사위였다.


살풀이춤과 한량춤을 감상하노라면 내 마음은 언제나 텅 빈 충만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 겸허해지기 때문이다.

기쁨에 겨워 추는 춤.
슬픔에 젖어 추는 춤.


어느 춤이라도 좋다. 춤을 출 수 있는 분위기 그 자체를 나는 좋아한다. 흥겨운 춤이든 허허실실 춤이든 자신의 마음을 춤사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캡처 : 한국문화원 https://www.kccla.org/events/ko/view/?eid=5402&cm=8&cy=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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