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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제베 Oct 02. 2023

취중만담

추석 명절의 이유로 어제부터 낮술 마실 순간이 자주 생긴다. 싫지는 않다. 모처럼 친인척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잔을 권하다 보면 언제나 아내의 차례에서 술잔이 끊긴다. 밀밭에만 가도 취할 것 같다는 아내는 술을 전혀 못 마시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무척 아쉬운 순간이지만 여류작가들의 술 이야기인 <취중만담>의 한 문장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떨군다.


술 마시는 것을
세상의 상식으로 여기는 오만함이
내 입장에서는 조금 우습다.
<취중만담> - 아사쿠라 外


커피는 이성적인 것들의 선동자고 술은 비이성적인 것들의 해방자라고 한다. 따라서 커피는 기분전환을 위해 마시고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는데 과연 그럴까?


왜 술을 마시게 될까. 식상한 우문이다. 차라리 쌀로 어떻게 술을 만드나요,라고 묻는 게 낫다. 술 마시는 이유는 무궁무진해서 술좌석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술을 담그는 방법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주당이라고 술 담그는 것 까지는 길게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술의 단점 중의 하나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수시변동이라는 것이다. 진부함의 피로감을 느낄 수가 있다. 중국 사기에 나오는 유명한 홍문의 연(宴)에서 항우에게 결코 술 사양을 하지 않았던 번쾌의 두주불사는 장수의 기개로써는 이해할 수 있다. 술에는 결코 장사가 없다. 번쾌의 술좌석도 끝이 있다는 것이다. 길어서 탈이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적당한 홍조로 의연하게 술을 마시는 타입이 좋다. 술은 마시다 보면 적당한 주량의 통제가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신윤복의 그림인 ‘유곽쟁웅’의 모습을 보일만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제를 한다.


신윤복 <유곽쟁웅> 출처 www.wetrend.co.kr


나는 소주는 못 마시지만 맥주는 무척 좋아한다. 맥주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맥주 맛을 알고 마시는 것은 아니다. 맥주에는 수 백 가지의 종류가 있고 브랜드로는 수 만 가지가 넘는다. 맥주의 큰 틀에서 람빅맥주는 아직 마셔보지 못했고 라거맥주, 에일맥주 맛을 구분하는 정도다. 맥주는 브랜드별로 비교하며 맛의 차이를 느껴가며 마시는 즐거움은 있다. 맛을 시음할 때는 포만감을 주지 않는 간단한 팝콘정도의 안주로 맛을 보면 좋다. 맥주 브랜드에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을 결부시켜 마셔도 즐겁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가 좋아했다는 잘츠부르크의 스티겔 맥주를 마실 때에는 모차르트 음악을 생각하며 마신다. 기네스 맥주를 마실 때에는 캔에 들어 있는 위젯볼의 거품이 거꾸로 이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기네스북에 실린 특이한 기록을 폰 검색하며 마신다. 히틀러는 펍에서 이런 술 기분으로 군중 연설을 했고, 종교개혁의 마르틴 루터는 이런 술 기분으로 종교재판에 나갔을까? 하는 비하인드를 헤아리며 마신다. 어쩌다 양주가 생기면 깊은 밤에 나 홀로 언더락을 만들어 마실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최성수의 ‘Whisky on the rock’을 틀어놓고 마시면 양주 분위기에 어울린다. 혼술의 경우다.


술 자랑처럼 허무한 것도 없다. 몸 버리고 돈 버리고 때로는 마음까지 버린다. 따라서 술기운을 빌려서 뭔가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건 내가 술을 마시는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돈 내면서 내 술 안 마셔준다고 화를 내는 게 술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게 되는 계기에 되도록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왜 마셨냐고 물으면 주당의 권위 내지는 자존감에 방어전선이 드리워진다. 공격과 방어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전투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권위는 무슨 권위?라고 했다가는 연장전에 페널티킥까지 겨뤄야할 지 모른다. 뒤끝이 길면 다음 날 서스펜디드 게임까지도 갈 수 있다.


이 세상에 술이 없어지지 않는 한, 술 취한 사람에게는 묵언수행이 현명한 답이 아닐까 한다. <취중만담>의 문장처럼 비주류에겐 한심한 상황이지만.


아제베의 일상에세이는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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