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쟝아제베도 Jun 06. 2024

비혼주의가 깨졌던 사진의 기억

시골집 정리를 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반가워 보이는 낡은 페넌트가 눈에 띄었다. 총각시절, 어머니와 함께 도쿄타워에서 찍은 사진을 인쇄한 페넌트였다. 오래전부터 뒷방에 걸려있는 페넌트였지만, 항시 옷가지가 그 위에 걸려 있었기에 무심히 지나쳐온 페넌트 사진이었다. 한동안 페넌트의 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였다.


서른이 넘어서도 비혼주의자였던 나에게 어머니의 한숨은 깊어졌다. 그 한숨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시절 나는 비혼주의를 고집했다. 나아가 일본에서의 직장생활은 정년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신이 많은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혼자서도 즐길 있는 여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60대 후반이던 어머니는 급기야 혼자의 몸으로 도쿄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귀국할 때까지 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결혼 이야기를 하면 내가 짜증 낼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하고 그냥 모자간 여행기분만을 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 나들이를 가면 남산서울타워에 가듯이, 나 또한 어머니를 모시고 도쿄타워에 갔다. 지금 시골집 벽에 걸려있는 낡은 페넌트의 사진은 그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 여행자 비자는 15일간이었다. 보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지냈지만, 도쿄타워 기념사진 외에는 어머니와 도쿄 나들이를 했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어떻게 방어적(?) 대답을 할까 하는 경직된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추측된다.


결과적으로

3년 5개월의 첫 번째 일본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후 결혼을 하였다.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결혼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나리타공항 출국장으로 쓸쓸히 들어가는 뒷모습에 나의 비혼주의는 깨졌던 것이다.


어머니도 그동안 낡은 페넌트 사진을 보며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리고 왜 어머니와 유럽여행 계획을 안 가져보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어볼 수도 없고 유럽여행을 계획할 수도 없다. 이승에서 못 물어본 궁금증과 계획을 꿈속에서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제베의 [딜레탕트 오디세이]에서

<썰로 푸는 나 홀로 비엔나 여행기>를 시작했습니다. 많관부~~~















매거진의 이전글 비엔나 여행 밖의 두 가지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