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병들게 했던 일기

잘못된 소통

by CMOONS

「과장 새끼는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얼굴을 구긴 채 나의 출근 인사를 씹었다. 편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선택적 분노 조절 장애인인 과장은 아침 회의시간만 하더라도 지점장한테 실실거리며 웃음을 짓더니,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숟가락으로 똥을 한 숟가락 퍼먹은 얼굴로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분명 자기가 까먹고 놓친 부분을 두고 왜 이걸 제대로 챙기지 않았냐며 미친놈처럼 성을 냈다.


병신 새끼. 이 새끼는 늘 이런 식이다. 아… 이 병신을 얼마나 더 오랫동안 마주해야 하는가. 미친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사무실의 누구도 이 새끼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저 과장보다 늦게 들어온 이가 더 빨리 승진했다는 사실로 이 병신의 회사 내 입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승진 누락 후 더 높은 빈도로 짖어 대는 통에 나는 갈수록 야위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소화가 잘되지 않았고 늘 무기력하고 피로했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날 때면 다음 날 회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X발. 출근길 그 새끼가 차에 치이거나 아니면 내가 치어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위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와의 소통이라며 써왔던 일기 중 한 부분이다. 당시의 일기 대부분이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그 원인이 되는 대상에 대한 욕, 더는 못 견딜 것 같은 감정과 억울함이 주를 이루었다. 내 딴에는 이런 행위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적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나의 상황과 마음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원흉이 되는 과장과는 물론 동료 직원, 내 주변 사람들과도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고, 회사에 다니기가 갈수록 버거워졌다. 이후로도 일기장은 내가 겪은 고통과 절망들로 채워졌고, 그것들이 쌓여갈수록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갔다.


지나서 깨달은 거지만 저 방법은 나를 갈수록 어둡고 병약한 상태로 만드는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저런 것들뿐이었으니 당연하게도 나는 입만 열면 삶에 대한 푸념과 어려움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통에 어느새 가까운 사람들마저 나와의 대화를 힘들어했다. 당시 나의 입은 나의 괴로운 상황과 분노 대상에게 퍼붓는 육두문자, 그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 들이키는 소주가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었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라 했지만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 회사를 벗어났다. 원인이 되는 장소와 대상을 벗어났으니,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 적응해 가던 중에도 삶에 대한 불만족은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새로운 환경이 전보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직장 동료와 회사 체계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작아진 급여가 아쉽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 스스로도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불현듯 문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고민하던 중 지금껏 써오던 일기장까지 손이 가게 되었다. 일기장을 쭉 훑으며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일기장에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에게는 항상 문제가 있었고,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있었으며, 그 고통을 계속해서 곱씹고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었다.


처음엔 당시의 내 모습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 당장이라도 그때의 나에게 달려가 위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읽다 보니 일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어 있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일기장을 넘겨보았다. 놀랍게도 주저리 늘어놓았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나 ‘방향성’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엔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외부적 요건들이 바뀌기만을 혹은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헛된 바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그 일기들은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저 나를 병들게 하고 결국 고꾸라지도록 만드는 ‘저주’에 가까웠다.


이후 나는 일기를 쓸 때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겪었던 억울한 상황과 감정들에 대해 기술 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왜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나는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절망으로만 가득 찼던 일기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푸념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작은 해결책들을 찾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여전히 삶의 많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삶의 문제들은 그리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바뀐 것이 있었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씩 바뀐 것이다. 과거의 나는 주어진 것들에 대해 한껏 푸념하고 마음에 드는 상황으로 바뀌기를 막연히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그곳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화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 후,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에게 더 집중했다. 업무적으로 힘이 들 때면 혼자 안 좋은 생각으로 빠지지 않고, 주변 동료들이나 상사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런 시도가 큰 결과물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여전히 업무와 인간관계는 버거웠고, 헤쳐 나가기 난감한 갈등들을 종종 마주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나의 마음은 조금 더 편안해졌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이 곧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일기는 자기 생각을 자신에게 전달하는 가장 내밀한 소통 행위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간다면, 그런 일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인 말만 채워왔으니 내가 힘을 얻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나와 같이 스스로를 망치는 일기를 써왔던 사람이라면 방법을 한 번 바꿔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무조건적인 감정 배설이 아닌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직시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 후,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작은 일을 찾아내 실천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고민하고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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