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소음이다.
육아를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싫어졌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동시에 여러 장난감을 켜 놓고, 블록들을 바닥에 던져 대며 놀았다. 덕분에 우리 집 거실은 항상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 내가 아무리 끄고 다녀도 아이는 다시 장난감으로 다가가 전원을 켰고, 블록들을 던져 댔다.
가끔 머리가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아예 장난감 건전지를 뽑아 놓은 후 블록을 안 보이는 곳에 치웠다. 그럴 때면 아이는 켜지지 않는 장난감을 바라보며 ‘힝~’ 거리며 찡찡댔다. 그렇게 찾아온 잠깐의 고요와 아이의 찡찡대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흡족해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장난감을 찾아 전원을 켜는 통에 그 평화는 매번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두드러기와 콧물, 가래 때문에 10일간 병원을 드나들며 약을 먹었던 아이는 전날이 돼서야 약을 끊은 상태였다. 매번 손자를 보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를 위해 급하게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 맛있게 갈비탕과 생고기를 먹고는 경치가 좋은 카페로 이동했다.
그 카페는 새롭게 조성한 산책로가 예쁜 곳이었다. 배가 불렀던 터라 주차한 후 카페에 들어가기 전 먼저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책 전 아이가 다시 아플까 염려되어 옷을 따뜻하게 입혔고, 유모차에 바람막이도 씌웠다. 그날따라 햇볕이 따가웠지만 바람은 찼고, 아침에 37.5도로 아이 치고는 정상 체온이었지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산책로는 생각보다 좋았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여서 그런지 모두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산책을 마치고 카페에 가까워질 때쯤 아이의 얼굴을 보니 제법 빨갰다. 바람막이 탓에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짜증을 내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급하게 카페로 들어가 아이의 볼을 만지니 그다지 뜨겁진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 체온을 재니 38.5도, 조금 후 다시 재니 38.9도가 나왔다.
아뿔싸.
걱정되는 마음에 옷을 전부 벗기고 물을 먹이고 물수건으로 아이를 닦았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활발하게 웃으며 카페를 활보했다. 바라보는 어른들 모두 괜찮아진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 후 다시 체온을 재니 여전히 38.9도였다.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자고 했다. 아내가 짐을 싸는 동안 열을 식히는 데 물이 좋다고 하여 무릎에 앉혀 물을 먹이는데, 오늘따라 아이가 빨대로 물을 급하게 빨았다.
“천천히 먹어~”
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아이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장난을 치나 싶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돌려 아이를 마주 보니 아이의 검정 눈동자가 위에서 누가 끌어당기듯 뒤집혔다. 입으로는 ‘꺽꺽’ 거리며 숨을 쉬지 않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흰자를 드러내고 입술이 파래진 아이를 마주한 나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왜 이러지?’
‘숨을 안 쉬는데?’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뭘 해야 하지?’
이미 죽어버린 것 같이 축 늘어진 아이에게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언젠가 군대에서 배운 하임리히법을 시행했다. 물을 마시다 어딘가 막혔으니 그곳을 뚫어주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나는 아이의 복부 위쪽을 미친 듯이 압박했고, 얼마 후 아이의 입에서는 걸쭉한 가래와 콧물 같은 것들이 잔뜩 흘러나왔다. 무언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압박을 했지만, 내 손에는 시체처럼 축 늘어져 전혀 움직이지 않는 작은 존재가 내 움직임에 맞춰 흔들거릴 뿐이었다.
119와 연결된 아내는 상황을 설명했고, 수화기 반대편의 목소리는 지금 시행하던 것을 멈추고 일단 눕히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눕히니 아이는 아직도 전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입술은 그대로 파랬고, 눈은 여전히 흰자만을 드러낸 채 반쯤 감겨 있었다.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주 약하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반대편의 목소리는 그것조차 멈추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해져 아내에게서 전화기를 빼앗아 빠르게 내가 조치한 내용을 말했고, 그럼 숨을 안 쉬는데 대체 무얼 해야 하냐며 상대방을 채근했다.
“아이가 숨을 쉬나요?”
“아니!!!, 안 쉰다니까요?!!!”
“진정하시고, 배를 한 번 봐보시겠어요?”
“아!, 안 움직인다고요!!!, 진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예요? 예?!!!”
그 순간 계속해서 멈춰있던 아이의 복부가 희미하지만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요. 배가 살짝 들리는 것 같아요.”
잠시 후, 아이가 작은 신음을 냈고, 입술에는 붉은기가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힘없이 끙끙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일단 그대로 두시고 고개만 돌려놓으세요. 곧 구급차가 연락 줄 테니 전화받으시고요.”
나는 알았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신음 소리를 내며 우리를 쳐다보았고, 자신을 안아 달라며 작은 몸짓을 했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말한 후, 구급차를 마중하기 위해 가게 앞으로 나갔다. 연락을 받은 후 얼마 안 있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분들과 함께 이동해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에게 갔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구급대원 중 한 명이 내게 아이를 안고 구급차에 탑승하라고 말했다. 구급차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축 늘어졌던 아이는 다행히 조금씩 기운을 찾기 시작했다.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고, 한참 후에는 구급차 내부의 신기한 것들에 손을 뻗기도 하였다. 구급대원은 다행히 아이가 많이 회복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 소아과 전문의를 마주하니 열경련으로 보인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여기서요?”
“원하시면 집 가까운 곳으로 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꼭 입원하셔야 합니다. 24시간 내에 또 경련 시에는 대학병원으로 가셔서 검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이의 제대로 된 케어를 위해 집에서 가까운 곳이 적당하다 판단하고는 해열 주사를 맞은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의사의 말은 명확했다. 24시간 내 재경련 시 뇌 이상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열 관리를 위해 입원이 필수라는 것.
집으로 향하는 길, 미리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입원 가능 여부를 묻기 시작했다. 사는 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미리 짜기라도 한 듯 현재 병상이 없으며, 있더라도 지금 예약 환자가 많아 입원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독감이 유행인 탓이었다.
다행히 조금 거리가 있는 동네 병원에 전화를 걸었을 때 병상이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고, 우리는 집에 도착해 입원 준비를 한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병원에는 이미 수많은 환자가 대기 중에 있었다. 소아과 예약 앱인 ‘똑딱’을 사용하였음에도 한참을 기다렸다 진료를 본 후 입원 수속을 할 수 있었다.
아이의 검사 결과, 독감에 폐렴이었다. 예상 입원 기간은 5일. 생각했던 기간보다 길어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처음엔 둘 다 병원에서 잘 예정이었지만, 1인실도 없고 짧지 않은 병원 생활을 고려해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던 아내를 집에 먼저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다인실에서 아이와 입원 첫날을 보내게 된다.
아이는 해열제에도 불구하고 밤새 열이 오르고 땀을 흠뻑 흘리며 칭얼댔다. 1시간마다 체크를 위해 방문하는 간호사와 간헐적인 주사 투여로 인해 나와 아이는 첫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피로한 상태로 아침이 왔고, 아이 링거 탓에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며 정신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자 점심쯤 아내가 병원에 도착했다. 아내에게 아이를 맡긴 후 빠르게 볼일을 보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경련이 일어난 지 24시간이 지났다. 정밀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가시자 우리 부부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후 추가 검사 결과들을 통해 아이에게 폐렴을 일으킨 원인이 ‘마이코플라스마’라는 이름을 가진 지독한 놈이었다는 것과, 그 녀석이 이전 10일간 아이에게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감기 증상을 일으켰을 확률이 높았음을 알게 되었다. 기존 병원에서는 열이 나질 않아 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날 다행히 1인실이 생겨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총 5일을 보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3일 후, 의사의 지시대로 우리는 다시 한번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아직도 코가 좀 있다고 말하며 청진기를 아이의 가슴과 등에 가져다 댔다.
“이제 콧물 약만 3일 먹고 안 오셔도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10일간의 두드러기와 콧물, 가래, 열경련, 119, 독감, 폐렴, 5일간의 입원. 링거를 꽂고 바이러스를 내뿜으며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정말 지옥이었다. 덕분에 아내와 나까지 독감에 걸려 지금까지도 약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겨우 점심을 먹고 약을 먹은 후 고개를 드니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장난감을 바닥에 던지고, 동시에 2개의 노래를 켜고, 신이 나 소리를 질러 댄다.
그런데 그게 이전처럼 싫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부디 건강하게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