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소화할 준비가 문제였다
낯선 것들이 끌렸을 때가 있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일. 그런 것들이 신선함을 주고 나라는 인간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지난 현재 시점, 나는 더 이상 낯선 것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잘 아는 곳에서 아는 사람들과 유사한 일을 하며 루틴하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20대 시절, 워킹홀리데이가 유행했을 때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여자친구와 사귄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자친구에게 허락을 얻어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나는 나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사는 곳이 바뀌면 나라는 인간도 크게 바뀌고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에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1년간의 해외 경험은 사는 곳의 변화만으로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을 뿐이었다.
이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흔히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낯섦을 무릅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많다’는 감상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낯선 일 또한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다 주진 않았다. 학교 동아리부터 워킹홀리데이, 대학원, 다양한 아르바이트, 두 번의 직장생활로 나름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처음 마주하는 일에 대한 낯섦과 무지는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처럼 나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실수와 반복은 내게 ‘숙련’과 ‘익숙함’을 선사했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김없이 ‘권태로움’이 찾아왔다. 권태를 피하려고 많이 배우는 게 좋다는 생각에 새로운 업무를 택했지만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회사에서는 새로움의 리스크와 고생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굳어졌다.
이렇게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일은 어느 정도 내게 충격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 할 큰 변화와 만족감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그래서 왜 그랬을까 곰곰이 돌아보니 문제는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소화할 준비가 덜 된 나에게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낯선 곳에 가더라도 제한적인 반경에서 뻔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변할 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 나갈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그 만남은 잠깐의 자극에 불과할 뿐이었다. 낯선 일은 스트레스와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원하지 않거나 보상이 시원치 않으면 이내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낯섦에서 얻은 것도 깨달은 것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큰 이동 없이 제한된 관계 속에서 루틴한 삶을 살아가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낯선 것에서 얻고 싶어 했던 변화와 성장은 외부적인 것들의 영향도 중요하지만 내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 좋은 일들이 내 주변에 가득해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가 없다.
마치 작은 작은 잔에 좋은 술을 아무리 콸콸 부어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 시기에 내가 해야 했던 일은 ‘더 많은 낯섦’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그 경험들이 스며들 수 있도록 나라는 술잔을 살피고 키우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술잔은 타고난 한계가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여유와 역량이다. 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나는 이미 가득 차버린 간장종지만 한 술잔을 들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이미 넘쳐버린 술잔에 술을 받으러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나의 술잔을 살핀 후 잔의 크기를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것이다. 동시에 내 잔의 크기에 알맞게 술을 얻어 마시러 돌아다니고 있다. 가끔씩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끔씩은
‘내 잔은 저 사람에 비해 왜 이리도 작은 거지?’
라는 생각에 조급함과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내
‘그런데, 어쩌란 건가? 이게 나고, 짜증 낸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라며 스스로 정신을 차린 후, 오늘도 간장종지보다 조금 더 큰 술잔에 넘치지 않을 만큼의 술을 따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신다.
마시고 난 후 입맛을 쩝쩝 다시며 잘 생각해 보니, 이런 감질나는 크기 때문에 술맛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조금씩 더 커질 내 술잔에 담길, 그 기가 막힌 술맛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