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OO반 입소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원장선생님이 입소추첨의 시작을 알렸다.
‘뭐야, 이 분위기? 왜 이렇게 진지해?’
약간의 당혹감을 느낀 나는 긴장한 채로 혹여 중요한 걸 놓칠 새라 원장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어린이집이었다.
얼마 전 나는 어느 새 훌쩍 커버린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를 위해 입학신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하여 추첨을 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냥, 대충 내부에서 돌려서 알려주면 될걸 굳이 추첨까지?’라며 툴툴댔던 나는 혹여나 늦을까 일찍 집을 나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선 후 어린이집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추첨이 있을 방으로 이동했다.
대충 순서대로 나가서 번호표를 뽑거나 할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방에는 추첨 관련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고, 번호표가 부착된 13개의 의자와 로또 방송에서 보았던 번호가 쓰여진 공들, 그리고 속이 보이지 않는 투표함이 앞쪽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었다.
부모들이 도착하면 순서에 따라 의자로 안내를 받았고, 5번째로 도착한 나는 5번이 적힌 의자에 앉아 추첨 시간이 도래할 때까지 대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 시간이 되었고, 원장 선생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가 신청한 1세 반은 총 15명을 뽑을 예정이었는데 26명이 지원한 상태였다.
복잡한 우선순위를 다 따지고 나니, 내 아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딱 9자리였다.
추첨 대상은 총 13명이었으니 운 나쁜 4명이 되지만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 잘 살펴보니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2명의 학부모가 시간 내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추첨이 시작할 때까지 오지 않을 시 자동 제외된다고 하였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그 두 분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불행한 2명에만 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추첨 순서를 위한 번호 뽑기가 진행된 후, 드디어 진짜 입소 추첨이 시작되었다.
아직까지 참석하지 않은 2명이 제외되어 이제 11명이 9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되었다.
이미 확정된 1~6번까지의 공을 제외하고 7~17번까지 총 11개의 공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16, 17번만 피하면 성공인 상황이었다.
추첨순서에서 2번을 뽑았던 나는 두 번째로 나가 상자에 손을 넣고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공을 손에 꽉 쥐고만 있었다.
불길했다.
이후 조용히 다른 학부모들이 뽑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 한 학부모의 탄식이 들려왔다.
‘한 명 제꼈고.’
하지만 이후 계속되는 뽑기에도 불구하고 탄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손에서 땀이 났다.
“이제 15번 이내의 번호를 뽑으신 분들은 직원에게 공을 보여주신 후 접수를 하시고 귀가하셔도 되겠습니다.
초과하는 번호를 뽑으신 분들은 공만 반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직원에게로 갔다.
나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레 공을 쥔 손을 열어 보았다.
한 자리였으면 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앞자리 1이 먼저 보였다.
‘헉, 이거 뒤에 6 아니면 7 아니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슬며시 뒷번호를 가린 엄지를 치워보았다.
“크흡…”
뒷번호를 확인한 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추첨장을 나선 후, 조용히 직원에게 공을 반납했다.
직원이 건네받은 그 공엔 불운의 숫자 16, 17이 아닌 ‘1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어린이집을 나서자마자 추위 탓에 주머니에 구겨 넣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들, 아빠 성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