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후반, 현상유지만으로도 벅찬 나이
15년 전 과음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함께 먹은 친구에게 연락이 오곤 했다.
“해장 어떻게 할래?”
친구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별 고민 없이
“햄버거 먹자.”
또는
“국밥이나 먹자.”
라고 답했다.
친구와 나는 씻지도 않은 채 식당으로 향했고, 느끼한 햄버거나 아주 자극적인 짬뽕 또는 순대국밥을 참 맛나게도 먹었다.
“크아~, 역시 해장엔 느끼한 게 최고지.”
햄버거 집에 간 날이면 치즈가 두 장이나 들어간 햄버거를 맛있게 씹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야, 누가 대체 해장으로 햄버거를 먹어. 다음 번에는 무조건 순대국밥이다?”
“알았어, 알았어.”
내게는 햄버거나 국밥이나 둘 다 상관이 없는 선택지였으나, 아주 가끔씩은 햄버거가 더 당겼다.
그럴때면 기어코 친구를 햄버거 집으로 데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는 위와 같이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해장을 마친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하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한 후 잘 쉬라며 말하고는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모였다.
든든한 해장 탓인지, 저녁 분위기가 주는 외로움 탓인지 해가 지면 다시금 술과 사람이 고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햄버거 또는 국밥으로 속을 달랬다.
15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도 햄버거와 국밥 그리고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 몸은 이전과 같지 않은지 비명을 지르곤 한다.
회사 회식으로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와이프가 내게 다가와 묻는다.
“괜찮아?”
“어우, 죽겠어.”
“뭐라도 먹을래?”
“우욱.. 아무것도 못 먹겠어.”
15년 전, 과음 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팠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속쓰림과 구토감만이 나를 찾아왔다.
“으이그, 그니까 적당히 먹으라고 했잖아.”
핀잔을 주는 와이프가 내민 따뜻한 꿀물을 마신 후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
한참 후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쯤 되니 천천히 배가 고파왔다.
“점심 뭐 먹을거야?”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와이프에게 묻는다.
“오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머릿속에 바로 햄버거가 떠오른다.
“햄버거?”
“또또또! 후회할 짓 한다.”
“햄버거는 좀 그렇지?”
“저번처럼 먹고 나서 또 소화 안된다고 난리치지 말고 콩나물 국밥이나 먹자.”
머릿속에서는 ‘순대국밥’이나 ‘머리국밥’이 떠올랐지만 지난 번 숙취가 심했던 날 그것들을 먹고 난 후 후폭풍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세월은 생각보다 나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좋아하는 것들을 내게서 멀어지게 했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 억울한 것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이전처럼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
그도 그럴 것이 얼핏 보기에도 정말 건강한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운동과 바른 식습관으로 내공이 많이 쌓여 있어 거기에 좋은 걸 좀 더 하면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나처럼 그에 못 미쳤던 사람이 늦게서야 노력을 하면 겨우 ‘현상유지’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 그마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은 어느 기점을 지나면 급속도로 상태가 안 좋아지고 만다.
나는 이 사실을 간헐적으로 만나는 대학동창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분명 20대 시절엔 전부 또래 같았던 녀석들이었는데, 이제는 관리를 한 친구와 하지 않은 친구 간의 차이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5살 이상 차이가 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심각한 녀석에게 친구들은 입을 모아
“야, 진짜 너 관리 좀 해. 그러다 죽는다.”
라고 말하면 그 친구는
“됐어, 어차피 결혼도 안 할 건데 그냥 대충 살다 죽을래.”
라며 안주와 술을 연거푸 입에 털어 넣었다.
자본주의에서만 양극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건강과 외모관리에서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서글픈 현실을 곱씹고 있을 때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나물국밥이 도착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식탁에 앉아 와이프와 함께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들거리는 손가락에 힘을 줘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었다.
맛있다.
하지만 역시 뭔가 부족하다.
머릿속에서는 햄버거와 순대국밥의 자극적인 맛이 떠오른다.
특히나 따끈한 패티 위에 노란색 치즈가 녹아 흐르는 느끼하고 고소한 햄버거가 생각난다.
하지만 콩나물국밥을 절반쯤 먹자 다시 찾아온 구토감에 정신을 차린다.
‘굿바이 햄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