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방향 모색 중
2024년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와이프의 휴직이 끝나고 시작된 2025년은 더욱 빠르게 흘렀다.
나의 상반기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와 함께 5시쯤 강제 기상 후,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밥을 먹인다.
와이프가 출근 또는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를 보다가 부랴부랴 씻고 아침을 먹은 후 출근을 한다.
오전에 출근을 하면 그날 업무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와이프가 일이 없는 날에는 집으로 달려가 함께 밥을 먹는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설거지를 한 후 다시 회사로 들어간다.
와이프의 출근 날에는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런 날은 장모님이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는데, 나를 아직도 어려워하셔서 편하게 지내시라고 회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 후 남은 업무를 마저 보다가 오후 4시가 되면 동료 직원들에게 조용히 인사를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을 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나라 육아친화정책으로써 어찌 보면 당연한 쓸 권리지만, 현실은 부서마다 케이스바이케이스였고 눈치 때문에 전혀 쓰지 못하는 부서도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부서 사람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했다.
와이프가 출근하는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장모님과 바로 바통 터치를 했다.
힘이 드셨는지 장모님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서셨다.
이후 와이프가 올 때까지 아이 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한 후 함께 놀았다.
틈이 좀 나면 재빠르게 이유식도 만들었다.
와이프가 뒤늦게 퇴근을 해서 돌아오면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자기 전에 밥을 먹인 후, 놀아주다가 재웠다.
그러고 나면 시간은 대략 8시.
지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따봉을 날렸고, 돌아가며 씻은 후 개인적으로 할 일들을 조금 하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상반기는 이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즐거움과 정신없음이 상존했던 기간이었다.
하반기부터는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장모님도 아이를 봐주시는 것에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으셨고, 나 또한 아기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싶은 욕구가 컸기에 큰 고민 없이 휴직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휴직을 한다고 알리자 몇 달, 아니 며칠만 아기를 보다 보면 회사가 그리울 거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두 곳에서 직장 생활을 겪으며 나라는 인간은 어딘가에 속해 일하는 것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충분히 느꼈던 지라 속으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직장을 가진 후 처음으로 긴 시간 동안 회사를 벗어나게 된 이번 기회를 그냥 보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이 시간을 활용해 회사를 벗어나 보고자 나름의 목표를 세워봤다.
다양한 선택지를 고민하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혼자 일할 수 있는 ‘웹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거면 내가 원하는 글도 쓸 수 있고,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겠다.’
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이 결정까지 쉽게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사업에 관심이 생겨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해 봤고, 음식점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사업하는 친척을 찾아가 이것저것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엔 둘 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인터넷 사업의 경우 쇼핑에 관심조차 없는 내가 함부로 건드릴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음식점의 경우 엄청난 체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친척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달콤한 과실만 보고 선택하기에 둘은 내가 장기적으로 할 만한 것들이 아니란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웹소설로 마음먹은 후 휴직 전후로 웹소설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고 하반기에는 한 작품을 완성해 보자는 대략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웹소설 관련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웹소설은 지금껏 읽으며 감동을 받아왔던 소설들을 생각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나의 지향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시간에 맞춰 쏟아내야 했고, 내용의 마지막은 항상 그다음 편을 독자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보게 하게 끔 궁금증을 유발해야만 했다.
즉, 작품성보다는 독자들이 다음 편을 읽게 만드는데 집중하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도파민을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내야만 하는 구조였다.
특히나 요구 산출량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그런 흡입력 있는 글을 하루에 5천 자 정도는 거의 매일 써낼 수 있어야 웹소설 연재가 가능하다는 말이 많았다.
그나마도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으면 수입은 0원일 수도 있는 처참한 구조였다.
그래서 많은 웹소설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먼치킨, 회귀물이 등장한다.
그래야만 맞닥뜨린 문제들을 너무도 쉽게 해결해 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개연성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휴직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웹소설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나의 웹소설 도전기는 몇 권의 관련 책을 읽고 짧은 소설을 써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부정적인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별개로 휴직은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하루 내내 아이와 함께 있으며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육아는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였다.
아이는 일어나서부터 잠잘 때까지 끝없이 부모의 관심과 케어를 요구했다.
그 와중에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매 끼니마다 나오는 설거지, 이유식 만들기, 때 되면 아이 관련 물품 쇼핑, 우리 부부 둘의 것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아이의 빨래 등등.
하고 나면 별 티도 안 나는 집안일과 같은 아기 관련된 일들은 끊임없이 생겨나 우리 부부를 쉴 틈 없이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육아휴직의 첫 번째 장점이 드러났다.
서로가 그 일을 겪어봤기에 서로의 노고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 어려움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와이프의 휴직 기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머리로만 대충 이해했지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었다.
다른 남편들보다는 잘 이해하고 돕는 축에 속한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하루 내내 아이를 본다는 것은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의미였고, 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
이 같은 공감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아이가 주는 고통을 통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
‘힘든 일을 함께해야 비로소 동료가 된다.'라는 말은 진리였다.
두 번째 장점은 아이를 하루 내내 쭉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 다닐 때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휴직을 해보니 그건 일부일 뿐이었다.
아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다양한 것들을 빠르게 배워갔다.
이를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삶의 큰 즐거움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향해 눈을 쏘아붙이며 주먹을 불끈 쥘 때도 있었지만, 아이가 보여주는 찰나의 웃음과 애교는 나도 모르게 주먹의 힘을 풀고 아이를 안아주도록 만들었다.
아이는 커갈수록 아주 능숙하게 부모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어갔고, 나는 부모로서 그 감정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건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쓴맛과 단맛이 공존하는 인생의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가 진정한 집돌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점이다.
와이프는 휴직 때 하루 내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좀이 쑤셔 한 번씩 혼자 다이소 산책을 다녀오거나 리프레시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는 몇날며칠 집에만 있어도 좋았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많았고, 즐길 거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를 포함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은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것을 답답해했고, 이를 풀기 위해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 부분은 회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겐 회사도 외출의 영역이었고, 휴직으로 회사를 안 가니 삶의 만족도가 급상승할 수밖에.
동시에 고통도 찾아왔다.
아직 휴직기간이 꽤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꿀꿀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남은 2개월도 회사 탈출과 장기적 삶의 즐거움을 위해 가장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운동으로 건강한 신체를,
투자공부로 자산증식을,
글쓰기를 통해 생각정리와 인생 2막 준비를 말이다.
언젠가는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게 내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왕 하는 거 이상한데 기웃거리지 말고 흥미 있는 걸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든 빨리 성취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회사를 그만둘 빠른 방법을 찾아 헤맸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끝엔 항상 강의팔이들과 사기꾼들이 있었고, 나 같은 조급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현혹되어 꽤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돈을 쉽게 많이 버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고 지향하는 것들 위주로만 관심을 가지고 시도를 하게 되었다.
웹소설도 그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알아봤던 거였는데 결국 맞지 않았지만 말이다.
길었지만 나의 2025년 10개월은 결국 찐육아 경험, 웹소설 포기, 휴직의 즐거움, 장기적인 방향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남은 2개월도 여태껏 그랬듯 앞의 웹소설의 경우처럼 내 생각만큼 흘러가진 않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 볼 예정이다.
복직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조금 슬퍼지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창밖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들을 바라보니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설마 내가 쟤를 굶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