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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fka Jun 22. 2023

눈을 맞춰요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교수내용지식(PCK)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교과 지식(또는 내용학), 또 누군가는 학급 운영 능력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처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저는 학생과의 '좋은 의사소통 관계 형성'이 좋은 수업을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은 결국 대화거든요. 교사가 학생의 말을, 학생이 교사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관계를 많은 교육학자ㆍ실천가 들은 만남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실존주의 교육철학자 볼노브(O.F.Bollonow)는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고 했고, 사토마나부는 배움이 나와 사물과의 대화, 나와 타자와의 대화,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교사가 교사에게'를 쓴 이성우 선생님의 주장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에 따뜻한 인간관계에 바탕한 실존적 만남이 없이는 참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부설학교에 근무할 때는 보통 1년에 10여 회 정도의 공개 수업을 했습니다. 처음 몇 년은 수업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의 반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이 발문 다음에는 이 발문을 해야지', '도입에서 시간을 7분 썼으니까 활동1은 15분까지만 해야지'같은 생각뿐이었죠. 당연히 수업은 잘 되는 경우보다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우리 반에는 똑똑한 아이가 없어'라며 아이들을 탓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아이들은 눈으로 몸으로, 그리고 언어로 신호를 보내는데 저는 저 할 일만 생각하느라 아이들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제가 수업의 가장 큰 방해요인이었던 것이죠. 최근 몇 년간 제가 아이들과 하고 있는 것은 서로 눈 맞추기입니다. 학생들과 눈 맞추기를 통해 저는 다수의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 개개인과 의사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을 맞추고부터는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고, 의사소통의 질도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자세도 달라졌고요. 멍하니 있거나 몰래 손장난 하던 아이들이 줄으니 저절로 훈육하는 시간이 줄어 수업도 더 알차게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눈을 맞춘다고 하루아침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질을 제고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노력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50여 회의 공개 수업과 600여 차시의 수업 컨설팅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수업을 잘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선생님, 몇 번의 실패 끝에 '해도 안돼'라고 자포자기 하는 선생님에게 일단 눈부터 맞추어 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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