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표의 횡령과 배임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회사가 풍비 박산이 났다.
그렇다. 불과 오키나와로 간지 4개월여 만이었다.
그때만 하여도, 오키나와에 막 가족들이 살 집을 구하고, 가전 및 가구들을 사고 있을 때였다.
가족들도 오키나와에 방문을 하고 있었다.(가족 비자 신청전)
오키나와라는 신혼의 달콤한 꿈이 깨기도 전에 먼저 내 삶이 깨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담담했고, 평안했다.
사실 그러한 자신감과 편안함이 어디에서 생겼는지는 지금도 그 답을 말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니까..
일본에 거창한 빽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년 아니 하다못해 몇개월을 놀 정도의
돈이 남아 도는 상황도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한국보다 더 큰 자신감이 있었다.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도 있었지만, 내가 갈 곳은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었다.
한국에서 이보다 더 한 상황들을 내 지난 삶속에 다 경험해 온것이
마음속의 파도를 극도로 잔잔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 바람에 따라 쉽사리 방향이 바뀌지 않고 비가와도 피할 때와 나아가야 할때를
알게된, 흔들리지 않는 진짜 불혹이라는 말이 맞는 그 시점에 내가 와 있었나 싶었다.
코멘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남아야했다.
한국에서의 집, 자동차 모든 것을 정리했었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도 갈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야했다.
이미 태어난 첫째 딸과 아내의 뱃속에 둘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