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들려온 둘째의 소식은 예상밖이었다.
지금도 아내와 이야기 하는 것중에 둘째가 제일 계획에 없었다고 종종 이야기 한다.
일본에서의 직장은..
다행히 모회사에서 손을 내밀어 주어서 그곳에서 지금까지 일을 하고있다.
회사도 바꾸어야 했지만, 거주지도 바뀌어야했다. 그 조건으로 입사를 했으니까.
그렇게 오키나와에서의 모든걸 접어야만 했다.
오키나와를 간지 반년도 안되어서 다시 또 짐을 싸고 정리하고..
그렇게 모든걸 새롭게 다시 후쿠오카에서의 정착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24년의 9월이었다.
후쿠오카를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받아들인 이유로는 내 이전 직업에서 일본에서 가장 내게 잘 맞았던
지역이 다름아닌 큐슈 후쿠오카였다.
그냥 후쿠오카에 오면 마음이 편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래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OK 를 했다.
오키나와의 안좋은 모든 기억은 내려놓고 새롭게 후쿠오카에서
직장부터 생활까지 모든걸 새롭게 시작해야했다.
그러나 바로 가족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였는데,
이 뒤로 약 8개월여를 더 홀로 생활을 하여야 했다.
이유는 24년11월에 둘째 딸이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일본어의 '라리루레로' 가 포함된 이름이 좋다고 해서
첫째 딸은 '루' 가 들어가고 둘째 딸은 '로' 가 들어가는 이름을 붙혀주었다.
코멘트.
가족이 함께 하게 된 것은 25년 5월이 되고 나서였다.
셋째 딸이 생기게 된 것도 그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