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소화해내면서 그럭저럭 잘 지냈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심리학 공부도 하고 상담도 이어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엉엉 울다가 오후엔 아무렇지 않게 공부했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모든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눈물이 났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나에게 밤낮 구분 없이 찾아오는 먹구름이 퍽 곤란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아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기억은 무심히 떠올라 머릿속을 유영했다. 6-7살 무렵의 일이었는데, 방바닥에 앉아있는 아빠 뒤로 살금살금 가 업히거나 어깨를 타고 올라가 목마를 태워달라고 조르던 모습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떠올려왔던 것들과 다른,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기억을 어이없어하며 쳐다보길 며칠째였다. 나는 내가 아빠를 좋아하기도 했었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아빠를 좋아했다. 당연했다. 아빠고 딸이니까.
좋아하던 사람을 미워하려고 애썼다. 싫어하고 증오해야 했다. 아이 생각엔 나쁜 사람을 좋아하면 똑같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그 때문에 피와 눈물을 흘리던 언니와 엄마에게 미안한 짓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하루아침에 부침개처럼 뒤집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아빠의 잘못된 언행, 태도, 단점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곱씹었다.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어른이 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된 언행과 단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홉 가지의 장점과 나에게 잘해준 것들보다 한 가지 상처되는 행동을 되새김질했다. 갑자기 헤어진 애인이 불쌍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쁜 사람으로 비치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두 달 만에 만난 애인에게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너한테 받은 상처를 곱씹고 크게 바라보았다는 고백도 했다. 애인은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미안했다. 우리는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만났다.
'나는 아빠를 싫어해. 상처를 많이 받았어.' 옆에 '근데 어릴 땐 많이 좋아했었어.'가 붙었다. 한 문장이 더 붙기까지 18년이 걸렸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아빠가 싫다. 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고, 과오를 인정하거나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용서와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그저 아빠를 좋아하고 따랐던 어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예쁘게 바라봐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
흔히들 정신승리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자신과 화해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나를 기꺼이 다독여준 순간, 나는 비로소 내 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