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친구처럼 가지고 있는 감정이 하나쯤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불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불안은 약하게 흔들리는 촛불처럼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왜 나한테 온 건지, 언제 나갈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마음 한쪽에서 호롱거리고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다.
2년에 가까운 연애가 끝나고 심리검사를 받은 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과정에서 오랜 친구의 얼굴을 처음 마주할 수 있었다. 유기 불안. 나는 버려질까 봐 불안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 가족들에게 몹쓸 짓을 해왔던 범죄자이다. 언니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언제 그가 나에게도 나쁜 짓을 할까 봐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래도 너는 친딸이니 아빠한테 가서 잘하는 척을 하라며 나를 그 사람에게 떠밀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어린 나의 마음에 버려질까 봐 두려운 불안이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내가 이제 막 사회인이 되었을 무렵 부모님은 마침내 이혼하셨다. 더 이상 아빠라는 작자를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해방감도 느꼈고, 동시에 이렇게 간단한걸 엄마는 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식들까지 고통 속에 넣어두셨을까 허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전 나는 처음으로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 척박했던 어린 시절 슬프거나 고통스러워도 나를 공감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어른이 내 주변엔 없었다. 언니와 엄마에게 내가 겪는 고통은 어리광에 불과했다. 이해했다. 그들이 겪은 상처가 훨씬 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라온 나에게 그사람은 단비 같았다. 나의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내가 아팠구나, 내가 슬프구나 하는 나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이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 울곤 했다. 그러면 그는 나에게 달려와 나를 토닥여주며 달래주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입체적인 캐릭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여러 면을 가지고 있어야 가장 사람 같기 때문이다. 그도 그랬다. 내가 힘들 때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던 그는 동시에 나를 힘들게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어려울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나를 원망하고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의존적이었고, 그는 통제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나쁜 의미로 우리는 참 잘 맞았던 것 같다.
아빠와의 마지막 장면들이 기억났다. 이혼하고 1년쯤 지났을 때 아빠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엄마는 놀라서 경찰에 신고했고 외출 중이었던 나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었다. "상습적인 가정폭력과 외도 때문에 협의이혼을 완료하신 상태이니 어머니 집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이 됩니다."라고 경찰에게 설명을 드리고 아빠를 돌려보냈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다양한 핑계를 대며 찾아오려 했지만, 나는 끝까지 그를 차단했다.
그의 태도 변화도 볼만 했다. 처음엔 경찰 앞에게 자신을 범죄자 취급했다며 화를 내던 양반이 계속 안 만나주니 나중에는 불쌍하고 병든 척을 하고 더 나중에는 우리 가족을 걱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우스웠다. '있을 때 잘하지 시 X놈이..'
아빠 이야기와 전 애인 이야기를 이렇게 교차해서 쓰는 게 전 애인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다. 전 애인은 아빠만큼 쓰레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나를 가장 살펴주면서 동시에 제일 함부로 대했다.
이별의 문턱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전 애인 입장을 생각했었다. 며칠을 고민해서 생각을 글로 적어내려 갔다. '지금은 힘들고 불안해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지, 안정될 때까지 옆에서 견뎌주어야지'라는 결론을 들고 그에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는 만남을 거절했다. 할 말도 없고 뭘 말할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나를 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다시 연락이 왔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얼굴도 못 보고 헤어진 게 마음이 아프다고. 그가 아파하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곤 다시 이성을 찾았다. 여러 차례 연락이 왔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보지 않겠다고 선택한 건 너니까 네가 느끼는 그 슬픔도 네 몫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