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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싸이트 kimsight Sep 20. 2021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1)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시 말해, 나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이기적이고 예민하고 못된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왜냐하면 나보다 14살이 많았던 언니는 싫은 것, 힘든 것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고, 나는 싫은 것을 거부하고 힘든 것을 다 표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우리 자매에게 "큰 딸은 흰돌, 작은 딸은 검은 돌 같다"며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혀를 내두르곤 하셨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못된 나를 미워했고, 어쩌다 혼자 힘들어하던 시기엔 이것도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 이렇게 된 것이라고 자책했다. 나를 떠난 사람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 전에 내가 했던 부끄러운 말과 행동들이 머릿속에 침투하여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과거에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괴로울수록 나는 앞으로는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곤 했다. 


고된 겨울을 보내고 난 뒤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재회했으며, 입사하여 동료들도 만났다. 애인도 사귀고 작년에 태어난 아기 조카도 만났다. 봄이었다.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하며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사실 남들은 남한테 그렇게 관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들도 나처럼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며 자기 살길 찾아 사느라 바빴다. 이건 내게 상처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이불을 차며 부끄러워했던 기억들을 내 친구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일상에 비중 있는 빌런이 아니었다니!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벅찬 봄을 겪으면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내가 그렇게 못된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만난 친구들에게 내 성격이 이상했던 것 같다며 용기를 내어 사과했다. 나의 고백을 들은 이들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며 우리를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이상한 부분이 조금씩 있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내가 그리 이상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소한 것에 미안해하는 나를 되려 걱정해주던 친구도 있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우리 언니는 이제 누가 착하다고 얘기하면 자기는 착하지 않다며 반박한다. 갱년기가 아니라 우리 자매는 착한 것과 약한 것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언니는 싫은 것을 거절할 내면의 힘이 없었다. 마음이 착한 아이가 아니라 약한 아이였고, 나는 싫은 것을 싫어하고 부당한 것에 화를 낼 만한 에너지가 언니보다는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만큼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는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처음의 문제 앞에 다시 섰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왜인지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머리로만 깨닫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어쩐지 나는 그 후에도 한동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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