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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싸이트 kimsight May 06. 2021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영화를 들여다보다_트루먼쇼

트루먼과 시 헤이븐 아일랜드(Sea-haven)

태어날 때부터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방송용으로 연출된 가상공간에서 자라온 트루먼. 그의 가족과 친구, 그가 다니는 직장과 매일 듣는 라디오와 tv, 내리는 비와 지고 뜨는 해까지 그가 사는 '세상'은 방송국 감독이 섬세하고 철저하게 설계한 가상현실이고 시청자들은 그곳에서 사는 트루먼을 매일 지켜본다. 남들은 다 아는데 트루먼만 모르고 있는 셈. 23년 전에 개봉한 영화인데 지금 생각해도 재밌는 소재이다. 지금이야 가상현실과 관련된 주제가 많지만 98년 당시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법하다. 영화 보고 나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어쩌면 설계된 게 아닐까?' 하고 상상해본 사람들 엄청 많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필자도 똑같은 상상을 해보았기 때문. 근데 나는 비행기 타고 해외도 가보고 배 타고 다른 섬도 가봤기 때문에 이렇게 큰 스케일로 설계된 공간이면 그냥 만족하고 살련다. 트루먼은 배 타고 가다가 세트장 벽을 발견했지만, 비행기와 배까지 탑승 가능한 가상현실에서 탈출하려면 우주선을 타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죽기 전에 우주를 가볼 날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만약에 실은 현대인 모두 우주선 타고 다른 행성으로 출장 가고 여행 다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현대시대에 촘촘하게 설계된 가상현실을 탈출하려면 남의 우주선을 빼앗아서 대기권 뚫고 나가야 하는 건가? (물론 현실은 우주선은커녕 배 조종할 생각도 못해봤을 것...) 여기까지 상상을 해보다가 트루먼이 필자와는 다르게 도전적이고 자극을 추구하는 개척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관점의 재해석] 나 빼고 다 가짜야!
트루먼의 세상이 현실이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그가 마을을 벗어나려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짜고 치는 것처럼 방해한다. 나를 둘러싸고 무슨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고 모든 것이 거짓말에 한통속 같은 기분. 트루먼의 답답한 심정에 너무 몰입하다가 다른 상상에 빠졌다. 역으로 '이 가상현실이 실은 실제 현실이고 그가 스스로 가상현실에 갇혔다고 상상한 거면 어땠을까?' 이런 이입과 상상을 하게 된 이유는 나의 가족 중 한 명이 우울증을 동반한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데 그가 저 트루먼 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슬퍼졌기 때문이다.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가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건네는 대화가 실은 다른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말 같고, 현실에 있지도 않은 환청과 환각이 생기는 현상. 그러니까 트루먼이 이 세상이 가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망상장애 환자라는 재해석을 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여행을 가기 싫어한 것은 아픈 트루먼을 위한 행동이었고 여행을 만류하는 아내의 말을 들은 그는 '왜 내가 여행 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 하며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가족사진을 보며 즐거워하고 계신 어머니가 자신을 집에 안주하게 하려는 음흉한 의도로 과거 회상을 하고 계신 것이며, 여행 갈 때 조심하라는 티브이 광고나 벽 포스터도 비슷한 의도로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아 찜찜하다. 여행사에 항공편을 알아보았는데 성수기라 티켓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이마저도 항공사 직원이 여행을 못 가게 하려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급하게 아무 곳으로나 가는 버스를 탔는데 우연히 고장 난 버스를 보며 내가 여행을 떠나려는 걸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방해하고 있구나 확신한다. 이웃집 사람들도 지나가는 차들도 다 계산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여행길에 난 화재사건도 자신의 여행을 방해하기 위해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아마 트루먼이 현실세계에서 이런 생각들을 말한다면 망상장애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이런 관점이라면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마 배를 타고 가서 만난 벽은 그의 망상을 더 강하게 구조화시키는 환각이었을 것이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도 그곳엔 그의 새로운 상상이 마중 나와 있지 않았을까?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하지만 위의 관점은 필자의 상상에서 비롯한 재해석이며, 영화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들이 트루먼의 생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방송국 감독은 가상현실을 설계하고 그곳에 철저하게 계획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여 트루먼을 길렀다. 처음엔 첫사랑을 찾아 여행을 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하자 방송국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여행을 만류하고 방해한다. 왜냐하면 트루먼은 시청자들에게 보일 목적으로 태어났고 자라왔으며 그 세트장에서 그의 임종까지 시청자들에게 보이도록 계획되어 있으니까. 그것이 사람들이 정한 그의 존재 이유였다.


어떤 것에 용도가 붙는 순간 그것은 수단이 된다. 그리고 존엄한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에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목적이 붙은 트루먼의 삶을 '인간으로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마지막 명대사를 남기고 세트장의 문을 연 순간은 그에게 붙어있던 목적이 떨어져 나간 순간이며 그가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앞서 '나는 그냥 살련다'라고 탈출을 귀찮아했던 나 자신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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