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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서 Oct 27. 2021

스페인 어촌마을의 귀여운 할머니

쿠디예로와 루아르카

오비에도에서 머물며 근교의 어촌마을인 쿠디예로(Cudillero)와 루아르카(Luarka)를 다녀왔다.

 두 지역 모두 주민들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스페인 해수욕장의 바다만 익숙하던 차에 생선 내음이 나는 작은 어촌마을은 색다른 볼거리였다.

모두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 길목이었고 오비에도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워낙 작은 마을인 탓에 버스 터미널은커녕 버스 정류장도 제대로 갖춰있지 않았고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길에 버스는 나를 덩그러니 던져주고는 떠나버렸다.

하얀 어촌마을 루아르카 전경


 몇 번이나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줬으니 다른 곳에 내려주지도 않았을 텐데 내려서 본 주위는 도무지 관광지 같지 않았다. 구글 지도를 켜서 관광지가 될 만한 곳을 천천히 걸어갔다. 겨울인 데다 연말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도 없고 길을 걷는 순례자도 보이지 않는다.

 루아르카는 바다 근처에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레스토랑이 여럿 있었지만 쿠디예로는 그 마저도 거의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바닷가 구경을 마치고 산 위에 달동네처럼 여기저기 퍼져있는 작은 집들을 한 바퀴 돌아보면 관광이 끝날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루아르카 광장


 하루에 몇 대 안 되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곳까지 온 시간보다 이곳에서 머무르며 관광을 하는 시간이 더 짧아 보였다. 산 위에 아기자기하게 위치한 작은 집들은 저마다 소박한 정원을 꾸며놓고 있었다. 선인장을 키우거나 담벼락에 집 앞 바닷가를 그려놓기도 하고 산타 인형을 밖에 내놓은 집도 있었다. 어촌 마을답게 생선을 말려놓은 집도 여럿 보였다. 집에서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밌게 구경하고 있는데 꽃 화분을 여럿 둔 집 마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작은 어촌마을 쿠디예로 전경


 나를 보더니 눈이 엄청 커지며 신기해한다. 외계인이라도 본 표정이다. 그 이후로 내가 작은 산동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올 때까지 할머니는 고양이처럼 나를 따라왔다.


마을 끝에 이르러 뒤따라오던 할머니에게 스페인어로 내가 먼저 “Hola~!”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스페인어를 어떻게 하냐며 매우 반가워하신다. 지금 알리칸테에 살고 있다고 하니 신이 나서 쿠디예로도 좋은 곳이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본인 집 마당으로 나를 손을 끌어 데려왔다. 내가 처음 보는 동양인이라던 할머니는 나를 집으로 이끄시고는 정원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 화분은 어떤 꽃인지, 언제 처음 키우게 되었는지 신이 나서 설명하는 할머니가 귀여워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한창 할머니의 수다를 듣다 집에 들어와 차를 한잔 하고 가라는 초대에도 버스 시간이 다 되어 작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Chao! cariño! 차오! 까리뇨!”


스페인에서는 친구나 가족 그리고 특별한 사람을 부를 때 애칭으로 ‘cariño’라고 부른다. 영어에 ‘Darling’ 정도에 해당하는 말로 모든 단어를 줄여 애칭으로 부르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호칭이다. 학원 선생님들이 나를 부를 때도 보통 이름과 함께 “Rosalia, cariño’라 불렀고 이름은 빼고 ‘cariño’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족끼리도 사용하는 호칭이라 부모님이 딸이나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보통 친근함과 사랑을 표현하는 애칭인데  할머니를 ‘cariño’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보는 호기심과 천진함이 눈빛과 표정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꼭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깊은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한 후 다시 오비에도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버스를 내려 준 곳으로 다시 가서 버스를 기다리려니 이정표도 없고 이곳이 버스정류장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버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버스는 오지 않고 있다. 버스를 놓칠까 할머니와 빨리 작별인사까지 했는데 오비에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한참이 지나니 앉아있던 벤치에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앉는다.

“ 혹시 이곳이 오비에도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맞나요?”

불안함에 먼저 말을 걸었다.

“맞아, 여기서 기다리면 버스가 올 거야. 나도 오비에도에 가는 길이니 안심하렴. 그런데 어디서 왔니?”

귀여운 단발머리의 이 할머니도 이방인을 보는 호기심 어린 소녀의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 한국에서 왔어요. 지금 언어를 공부하러 알리칸테에서 머물고 있어요.”

“한국에서 왔다고? 거짓말하지 마. 한국 사람이 너처럼 예쁠 리가 없어. 텔레비전에서 보면 김정일과 김정은처럼 한국 사람들은 모두 뚱뚱하고 못생겼던데 네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도 안 돼. 너처럼 날씬한 애가. 혹시 필리핀인 아니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예쁘다고 해주는 칭찬은 고마웠지만 한국 사람은 다 뚱뚱하고 못생겼다니 게다가 필리핀인 아니냐고 하는 말이 할머니에겐 칭찬이었나 보다.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모를 이 말에 할머니가 악의가 전혀 없음을 알기에 기분 나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저는 한국 사람이 맞아요. 남한에서 왔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김정일과 김정은은 북한 사람이고요. 한국은 아직 분단되어 있어요. 하지만 북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 김정은처럼 생기지는 않았어요. 스페인에도 뚱뚱한 사람, 예쁜 사람, 키 큰 사람이 다 있는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할머니는 내 설명 이후에도 계속 내가 한국 사람 일리가 없다며 내 정체성을 부정하셨다. 만국 할머니 공통의 특징인지 내 설명이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계속 본인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바빴다. 이윽고 기다리던 버스가 왔고 나는 할머니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히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이란 나라가 스페인에서는 그런 이미지였나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는 했다.



스페인에서 지내는 동안 인종차별을 겪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대도시는 제법 심한 일이 있는 듯했고 다행히 중소도시였던 알리칸테에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말이 서툰 외국인에 대한 무시는 가끔 경험하긴 했지만 그것은 인종차별인지 그냥 외국인에 대한 성가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기분 나쁜 인종차별을 겪은 적도 있었다.

가끔 일본인 친구들과 거리를 지나가면 초등학교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칭총이라 부르며 지나가기도 했고  번은 일본친구 D 함께 쇼핑몰을 지나다 남자아이 하나가  친구를 때리고 도망간 적도 있다. 언젠가 스페인 친구의 집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거리에서 한참을 떠들고 있는데 윗집에서 우리에게 물을 뿌린 적이 있었다. 당황해서 물을 닦고 있는 우리에게 그때  스페인 친구들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사과를 했다.


“스페인 사람을 대표로 정말 미안해.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에 대해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저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니 용서해 줘. 스페인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못된 사람이 다 있는데 오늘 우연히 나쁘고 못된 사람을 만난 거야.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도 저 사람을 싫어할 거야. “


진심이 담긴 사과에 스페인 사람들이 미워지려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맞는 말이다.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어디에나 좋은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에도 외국인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인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하나의 이상한 사람 때문에 스페인 전체를 싫어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스페인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기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그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로마에서 만난 예의 없는 경찰관과 소매치기 때문에 내게 로마는 최악의 여행지였고 불어를 하나도 모르며 도난 신고서를 작성하는 나에게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주는 경찰관 덕에 남들이 최악의 여행지로 뽑기도 하는 파리는 좋은 도시로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짧게 머무는 여행자였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였다. 로마에서 살아보았다면 나는 소매치기와 변태 대신 친절하고 다정한 이웃도 만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나라에 살아보는 것은 그 나라에 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페인에서 살지 않았다면 소매치기나 위에서 물을 뿌리는 인종차별자만 만나보고 이 나라를 최악으로 뽑았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살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인을 처음 만나는 할머니와 기분 좋은 수다도 떨고 어촌마을 할머니에게 날씬한 한국인을 처음 보여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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