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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Oct 20. 2021

오렌지빛 발렌시아



발렌시아를 생각하면 항상 오렌지가 떠오른다. 정갈한 대도시 고층건물 사이 가로수에 큼직한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현대적 건물이 들어찬 지역을 벗어나 관광지로 가면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이 오랜 기간에 걸쳐 추가된 유서 깊은 대성당이 있고 성당 주위에 심어진 오렌지 나무가 상큼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발렌시아에서 기원했다는 파에야 역시도 오렌지 빛깔을 띤 음식이다.



알리칸테 바로 위에 위치한 발렌시아는 버스를 타면 2시간 좀 못되어 도착할 만큼 가까웠다. 알리칸테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발렌시아 근처의 관광지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발렌시아 위치는 알고 있었다. 유명세에 비해 도시가 깔끔하고 치안도 좋은 데다 혼잡하지도 않고 대규모 쇼핑몰과 맛집, 관광지도 많아 주말에 여행 삼아 자주 다녀오곤 했다.



발렌시아에 유명한 관광지로는 발렌시아 대성당(Catedral de Valencia), 성당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미켈레테탑(El Micalet),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중앙 시장(Mercado Central),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비단 거래소(La Lonja de la Seda)등이 있고 현지인들은 한국의 코엑스몰과 비슷한 '예술 과학 도시'(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라는 문화 건축 단지, 발렌시아 동물원(Bioparc Valencia)에도 많이 간다. CAC(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예술 과학 도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오페라(Palau de les artes Reina Sofia)오세아노그라픽(Oceanogràfic)이라는 수족관도 볼거리이다.



전통문화를 볼 수 있는 유적지와 현대적 문화예술 관광지가 함께 있어 볼거리가 다채롭다. 관광지는 대부분 근처에 모여 있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버스터미널에서 중심 관광지로 도보로 20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발렌시아 대성당으로 향한다. 성당 내부 성전을 구경한 뒤 미켈레테 종탑으로 올라가는 티켓을 끊고 종탑에 올라가면 발렌시아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계단을 힘들게 올라온 터라 종탑 위에서 부는 바람이 유독 시원하게 느껴진다. 종 바로 아래에서 인증샷을 한 장 찍기 위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대성당에 갈 때마다 종 아래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눈을 돌려 탁 트인 시내를 감상한다. 한국에서는 전망대에서 항상 산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가리는 것 없이 모두가 뻥 뚫려있다. 어둡고 좁은 계단을 한참 올라와 보는 탁 트인 광경이라 가슴까지 트이는 것 같다. 감상을 마치고 다시 좁은 계단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온다. 성당 앞에 기념품 상점과 아이스크림 집이 쭉 들어서 있다.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집, 스페인 전통 아이스크림집, 버블 티 가게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고 성당 앞 광장에 앉아 오렌지 나무를 바라보며 더위를 식힌다. 다음으로 비단 거래소 건물에 가본다. 고딕 양식의 건물이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다. 14세기 상인들이 교역을 맺는 금융의 중심지였다는데 그래서인지 건물이 화려하다. 높은 천장에 건물의 기둥은 나선형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천장은 금박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바닥도 독특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어 경제의 중심지로서 걸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유한 상인들이 모이던 건물이었으니 최대한 화려하게 꾸몄을 터였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화려한 장식물보다 오렌지 나무가 가득 있는 중정이었다. 화려한 건물 중간에 아담하게 자리한 정원이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각 건물마다 관광객들이 꽤 드나들었지만 중정에만은 이상하리만큼 머무는 사람이 없었다. 중정에 앉아 오렌지 나무를 보며 그늘에 앉아 있으면 조용하고 시원해서 묵상을 해도 좋을 것 같은 안정이 찾아왔다. 거래에 성공하지 못한 상인들이 삶에 지쳐 이곳에 와서 잠깐 휴식을 취했을 것 같다. 이곳은 여의도 증권맨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던 여의도 공원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와 이제 시장으로 간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시장 역시 깔끔하다. 발렌시아의 매력은 도시 전체가 깔끔하다는 점이다. 허름한 곳도 없고 모든 곳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건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돔도 있고 화려하게 장식된 스테인글라스도 있는 예술작품 같은 건물에 시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 놀랍다. 게다가 유럽에서 가장 큰 농수산물 시장이라는데 명성에 맞게 규모가 제법 크다. 과일, 야채, 생선 등 없는 것이 없다. 과일을 직접 갈아 주스를 만들어주는 과일가게가 많이 보인다. 오렌지 주스를 주문해서 마셔본다. 싱싱한 오렌지를 그 자리에서 금방 갈아서 확실히 달고 맛있다. 길가의 가로수도 오렌지인 도시이니 오렌지 자체가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조금 더 가니 오르차타가 보인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오르차타는 많이 봤는데 생 오르차타를 파는 것은 처음 본다. 오르차타는 추파(chufa)라고 부르는 덩이줄기(tube)를 설탕, 물과 함께 갈아 차갑게 마시는 스페인의 음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발렌시아에 가면 마셔보라며 추천해준 음료였다. 추천해주는 선생님의 눈빛에 자부심이 가득했던 것 치고는 내 입에 맞지 않는다. 시큼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데 너무 달기까지 하다. 상인은 오르차타가 장에도 좋고 살도 빠진다고 연신 칭찬을 해댔지만 이것을 마시기보다는 그냥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게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같이 갔던 J는 입에 맞는다며 남은 내 오르차타까지 마셔버렸다.



 발렌시아는 스페인 대표음식 파에야(Paella)가 유래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광지 근처 레스토랑에는 파에야를 먹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파에야의 본고장에 왔으니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고 가기로 한다. 해물 파에야, 먹물 파에야, 돼지고기 파에야, 닭고기 파에야 종류도 다양하다. 기본인 해물 파에야를 시켰는데 원조라고 특별한 맛은 없다. 발렌시아에 처음 가는 친구와 갈 때는 파에야를 먹었지만 사실 발렌시아에 갈 때마다 스페인 전통 음식이랑은 상관없는 모던한 식당에 가곤 했다. 식당이 다양하지 않은 알리칸테와는 달리 발렌시아는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과 프랜차이즈 식당, 파인 다이닝 등 모든 종류의 식당이 있었다.



 파에야 뷔페도 있었는데 파에야를 종류별로 구비해놓고 있어 접시에 떠다 먹을 수 있었다. 파에야 외에도 샐러드나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많아 한국 친구들이 많이 가곤 했다.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식당들은 보통 CAC(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예술과학도시)근처에 많았다.



 우리나라의 코엑스처럼 여러 가지 전시와 체험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인데 현지인들이 관광을 많이 오는 곳이라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많았다. 학생의 경우 할인도 돼서 통합입장권을 사서 거기서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를 구경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건물 자체가 발렌시아 출신 유명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Valls)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데 둥근 우주선 같기도 로봇 같기도 한 건물과 하늘빛 넓은 인공호수가 어우러져 마치 영화 가타카 속 미래 도시에 온 느낌을 준다.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사진은 이곳 CAC를 찍은 사진이 많다. 발렌시아 대성당 근처의 관광지들이 발렌시아의 과거를 보여준다면 CAC는 발렌시아가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발렌시아 정부는 1996년 ‘예술과 과학 재단’을 설립하고 CAC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다양한 전시들이 열린다.



 실제로 방문했을 때 어린이들을 위해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와 영화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전시, 기후환경 변화를 볼 수 있는 환경 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색 있는 점은 모두 체험이 가능하고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직업체험에서는 미래에 도입될 원격 진료 서비스를 체험해볼 수 있었고 수족관에서는 거북이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들이 가득해 단순히 체험전을 위해서 만이라도 발렌시아를 방문하고 싶었다. 이토록 매력적인 도시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다른 도시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아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전에 한번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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