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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Dec 08. 2021

스페인 크리스마스에는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산탄데르

 위치도 좋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이 근사한 호스텔을 저렴하게 예약해놓은 상태라 산탄데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산탄데르는 세계적 은행인 산탄데르의 설립지로 이곳 역시 아름다운 해안이 자랑인 도시이다. 도착했을 당시 한여름 같은 햇살이 내리쬐어 캐리어를 끌고 가기 살짝 더운 날씨였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듯한 숙소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4인실 도미토리 룸에 나와  다른 여자  명이 묵었다. 어느 나라에서 온지도 모를 그녀는 3 내내 내가 잠이 들었을  숙소에 들어와 내가 나갈 때는 잠이 들어 있었으므로 크리스마스 인사 따위는 나눌 일이 없었다. 숙소에는  4명이 묵고 있는 듯했고 프런트에서 반갑게 나를 맞아주던 여직원은 마지막 손님이었던 나를 체크인하고 사라져 버렸다. 결국 그곳에 묵는 내내 나는 체크인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호스텔에서 본 산탄데르 해변


 


 해변이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밖을 나서니 벌써 밤이다. 건너편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어 가보았다. 말만 크리스마스 마켓일 뿐이지 파는 품목은 일반 시장과 같다. 가방, 손거울, 인형  흔한 벼룩시장에서   있는 품목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마저도 벌써 대부분이 문을 닫고 들어가서 파장 분위기이다.


영국에서 경험한 크리스마스 마켓에 비해 더없이 소박한 마켓에 실망감이 가득이다. 크리스마스 기념품을 하나 갖고 싶어 지갑을 열고 열심히  바퀴를 돌았지만 살만한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빈손으로 시끌벅적한 시청 광장으로 나가본다. 광장에는  트램펄린이 설치되어 있고 주위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온다.  옆에는 작은 회전목마도 있다. 아이들은 기구 위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어른들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시청은 알록달록한 전구들로 빛을 밝히고 크리스마스트리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Feliz Navidad!이라고 축하인사가 적힌 화려한 광장의 트리를 보며 나도 홀로 축하인사를 네고 광장 근처 푸드 트럭  군데서 추로스를 하나 샀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먹는데 기름범벅인 추로스가 생각보다 맛이 없어 크리스마스이브 만찬으로 실망스럽다. 숙소에 물과 요깃거리를  사서 들어가려다 피곤에 지쳐 그냥 돌아와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좋은 밤인 노체 부에나는 지났고 그날 밤이 정말 좋은 밤이었음을 다음날에야 알았다.

시청앞 광장


 드디어 크리스마스 아침,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게 되는 아침이다. 어제 보아두었던 해변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조식을 는다. 직원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마 아침에 시리얼과 식빵을 꺼내놓고 다시  듯하다. 목이 마르지만 우유와 주스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돗물을 마시려니 스페인 수질이 좋지 않은 것이 기억나 괜히 배탈이  듯하여 나가서 하나  먹기로 하고 산탄데르 유명 관광지인 막달레나 궁전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50분쯤 걸리지만 해안을 따라 경치를 구경하며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햇볕도 따사롭고 해변도 아름답다. 기분이 좋아 한참을 걸어가다 목이 말라 마실 물을 찾아 자판기도 찾아보고 간이매점, 슈퍼 찾아보지만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카페에서라도 사 마시려 찾아보지만 연 곳이 아무 곳도 없다. 갈증이 나고 더워 아름다운 궁전도 해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식당이라도 가서 음식과 함께 물을 주문해야겠다 싶어서 구글 지도를 보고 이곳저곳 찾아가 봤지만 다 문을 닫았다. 급한 마음에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정말 가게 단 한 군데도 연 곳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스페인에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24시간여는 편의점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처에 널려있는 편의점이 우리 생활에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몰랐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편의점을 설명하면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히 스페인어에 '편의점’에 해당하는 단어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명절에는 물론이고 연중무휴로 편의점이 운영하는데 이곳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영업하는 상점이 단 한 곳도 없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해안가에 모여 있다.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바다로 다이빙을 한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 모양이다.

산탄데르의 유명한 바다로 뛰어드는 소년 동상도 산타 모자를 썼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다며 연신 사진을 찍었을 텐데 기운이 없어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예수님이 탄생한 기쁜 날이 아니라 금식하고 절제해야 하는 사순절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돌아와 어제 배앓이를 걱정하느라 마시지 않았던 수돗물을 컵에 받아 벌컥벌컥 마시니 살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맞이 수영행사



침대에서 눈을 좀 붙이고 일어나니 숙소 전체가 조용하다. 평소 같았으면 여행길에 조금씩 챙겨 왔던 과자나 간식도 없다. 크리스마스에 근사한 저녁을 먹으려 하나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저녁 맛이 없다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추로스도 생각나고 아침에 대충 때웠던 시리얼도 떠오른다. 그때 좀 더 먹어둘 걸이라는 후회는 이미 늦었고 다시 구글맵을 켜서 프랜차이즈를 검색하니 버거킹 하나가 나온다. 연중무휴라고 적혀있다. 점심, 저녁 다 굶어 사나워진 상태로 지친 몸을 이끌고 마지막 기운까지 짜내서 15분 정도를 걸어갔지만 연중무휴라던 버거킹의 문은 굳건히 닫혀있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스페인에 온 것을 후회했던 것 같다. 숙소에 들어와 도움을 청해 보려 했지만 프런트에는 역시 아무도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억울하고 짜증이 난다.



소피아에게 왓츠앱으로 문자를 보냈다. 지금 산탄데르에 있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밥도 먹지 못하고 물도 못 마시고 있다고 한탄하는 나에게  그녀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모든 식당이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보내기를 원해서 아무도 일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야.”


‘아기 예수님도 성탄절에 이렇게 마실 물도 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크리스마스 밤을 마무리하기 위해 산탄데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니 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배낭을 멘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순례자들이다. 순례길에 있는 성당이라 그런지 어쩐지 더 경건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미사에 특별한 행사가 많다. 성가대에서 특송을 준비하고 주일학교 학생들이 아기 예수 탄생에 관한 연극이나 율동 등을 선보이기도 하고 신부님의 강론도 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 하는 것도 덜 하는 것 없이 보통날의 미사처럼 진행되었다. 미사를 보좌하는 남자아이가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을 하고 자못 진지한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고 서있는 것이 이곳 미사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성탄 미사는 항상 신자들이 한 사람씩 나와 구유에 절을 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제대 앞 구유 경배로 마무리 했다.

대성당 구유


 여기서는 신부님이 아기 예수님을 들고 계시고 한 사람씩 나와 예수상 발에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미사가 끝난다. 나도 기다란 줄에 합류해 차례를 기다렸다. 아기 예수님의 발등에 입을 맞추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지금 같은 코로나 상황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당시에도 나는 경건함 대신 앞사람이 입맞춤 한 발에 내가 또 입술을 대도 괜찮을까라는 인간적인 걱정이 먼저 들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고 예수님의 조그만 발에 입을 맞추고 돌아오는  정말  태어난 말랑한 아기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오는 기분이다. 그러고는 희한하게도 모든 것이  해결될  같은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곳이 가톨릭에서 유명한, 순례자들이 들리는 성당이어서였을까. 하루 동안 굶고 고생하느라 잔뜩 올라왔던 짜증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성당에서 봤던 구유  성가정처럼 모두가 가족과 함께하는 밤에    끼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 잔인한  같기도 하다.

 어릴  보았던 영화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주인공들이 가족의  안에서 행복을 깨닫는 결말로 끝이 났다.

 그렇다 크리스마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한끼 저녁을 위해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 나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밤이 저물었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는 무척이나 조용했고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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