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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Dec 01. 2021

스페인에서 크리스마스를

산 세바스티안과 빌바오


스페인은 크리스마스를 ‘나비닷(Navidad)’이라고 부른다. 나비닷은 스페인 최대의 명절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연말을 보낸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거리에 가로수마다 알록달록한 전구로 장식이 되어 있고 벨렌(Belén)이라는 성탄구유가 성당, 시장, 광장 모두에 설치되어 있다. 생각보다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은 들리지 않는다. 거리를 수놓은 장식은 11월부터 시작해 1월 말이 되도록 거리를 밝혔다. 도시마다 개성을 담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은 도시들은 소박하게 자신들 도시의 특성을 나타내는 아기자기한 장식을 해놓았고 큰 도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성당을 다니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행사보다는 휴일, 연인들을 위한 날이라는 의미가 컸다. 반면 스페인은 전체 인구의 94%가 가톨릭을 믿는 가톨릭 국가답게 가톨릭 전통에서 유래한 것들이 생활 속 전반에 깊숙이 박혀있어 그것이 종교에서 유래했는지 알지 못하게 숨어있다.


스페인의 젊은 세대는 대부분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말하지만 결혼식은 성당에서 신부님의 주례로 하고 이름도 가톨릭 성인에서 유래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활절과 성탄절이 모두 스페인에서는 중요한 명절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방학을 한 터라 나는 또 떠날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멀리 가지 않고 스페인 북부 지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주간에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북부 지방으로 여행을 간 것이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여행 간 곳들이 순례길에 포함된 도시들인 줄은 현지에 도착해 바닥에 있는 순례길 상징 조개 모양을 보고야 알았다. 단지 북부지방을 한번 가보고 싶었던 데다 우연히 친해진 스페인 친구 오이아나(Ohiana)가 그쪽이 고향이라며 크리스마스 주간에 머물 거란 말에 덜컥 떠났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말 연초에 유명 호텔이나 펜션이 항상 예약하기 힘들고 근사한 레스토랑 역시 비싼 값에도 대기가 줄을 선다. 그때는 항공권도 제일 비싼 성수기이다. 유럽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레 여행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런데 숙박 예약이 힘들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스페인 북부 지역 모든 호텔이나 호스텔이 여유가 있었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같이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동행을 구하지 못했다. 일본 친구들은 이미 해외여행 예약을 했고 한국 친구들도 각자 계획이 있단다. 독일이나 다른 유럽, 스페인 친구들에게 물으니 전부가 가족들과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동양 친구들은 여행을 떠나고 다른 유럽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떠나고 알리칸테는 텅 비어 버렸다.




여행을 떠나기 전 소피아(Sofia)가 스페인은 크리스마스에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며 여행할 때 불편할 수도 있다고 걱정스레 한마디 한다. 그런 소피아에게 한국에서도 명절에는 여는 상점이 별로 없이 김밥천국이란 곳만 영업을 한다고 농담을 하며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북부로 떠났다. 그때 소피아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 했음을 한참 후에 알았다.






첫 번째로 도착한 여행지는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이었다. 스페인은 지역별로 총 7개 언어를 사용하는데 모두 아는 것처럼 공용어는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어이고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로니아어, 포르투갈어에 가까운 북부의 갈리시아어, 프랑스 인접한 북부의 바스크어 등을 사용한다. 언어가 다른 만큼 지역별로 특색도 달라 마치 다른 나라 같다.


산 세바스티안은 바로 바스크 지방 기푸스코아 주의 주도로 바스크어로 도노스티아(Donostia)라고도 불린다. 우리에게는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해변도시로 그리고 미슐랭 레스토랑이 3개나 있는 미식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빌바오가 고향인 오이아나(Ohiana)와 산 세바스티안과 빌바오 지역을 함께 돌아보기로 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도시가 조용하다. 산 세바스티안은 국제 영화제와 국제 불꽃놀이 경연 등 각종 축제와 문화행사가 일 년 내내 열리는 관광 문화도시로 2016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고 들었는데 거리에 사람들도 없고 추운 바람만 서늘하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라 콘차


오이아나가 없었으면 사람도 없는 이 황량한 도시를 혼자 걸을 뻔했다. 특히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라 콘차(La concha)는 활기찬 바다가 아니라 궂은 날씨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성난 바다다.

오이아나가 설명하는 산 세바스티안과 바스코의 역사를 들으며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바다가 보이는 몬테 우르굴(Monte urgull)로 올라갔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도시의 절경이 한데 보인다. 하지만 기대했던 산타나 루돌프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라고 모래사장에 화려한 트리라도 세워둘 줄 알았는데 겨울 바다만 보인다.



오이아나는 동행 내내 빌바오와 바스코의 역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다. 외국인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소개해준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뿌듯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좀 더 각별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바스코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빌바오에서 보내기로 했다. 빌바오는 오이아나의 고향이자 스페인에서 흔치 않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오이아나의 설명으로는 바스크어로 빌바오는 ‘산 아래에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고 한다. 꽃으로 장식된 강아지 조형물이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유명하며 이곳 역시 순례길에 포함된다. 근처 성당에 들어가 보니 소박하지만 성당 입구에는 정성을 들여 성탄구유가 보이고 그 옆에는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그린 예수님의 탄생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보자기에 싸인 예수님의 그림부터 팝업카드 형식으로 만든 성탄구유 그리고 그 옆에 삐뚤빼뚤하게 쓰인 ‘Pablo’라는 이름까지 절로 미소가 나오게 한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크리스마스트리가 파란색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오이아나에게 이유를 물으니 파란색이 정치적으로 보수를 뜻하는데 바스코는 정치적 성향이 보수인 사람이 많아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느라 그런 것이란다.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는 파란색이 보수였는데 최근에 들어서는 보수파가 빨간색을 쓴다고 했더니 재밌어한다.

빌바오 대성당과 크리스마스 트리


광장으로 나오니 커다란 트리 주위로 동방박사들과 탄생과정을 인형으로 꾸며놓았다. 인형이나 장식의 생김새가 스페인보다는 터키에서 보던 모습과 더 비슷하다. 광장에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지나간다. 꼭 설에 설빔을 입고 기차를 타던 우리 모습 같다. TV 뉴스에서 보던 영국과 미국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거리와는 느낌이 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스페인 전통 의상은 강렬한 빛깔의 화려한 플라멩코 의상인데 이곳 아이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하얀색 프릴 치마에 흰 두건을 썼다.

빌바오의 벨렌(Belén)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아이들



 우리가 스페인 전통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와 가우디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스페인 엽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플라멩코 의상과 타파스 들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문화이고 성가족 성당과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축구팀이 그려진 기념품은 바르셀로나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북부인 갈리시아와 바스코는 이 두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음식이나 의상, 말과 도시 분위기까지 지역마다 색채가 너무 달라서 도무지 한 나라 같지 않다. 쓰는 말도 먹는 음식도 하물며 옷까지 스페인은 다니는 곳마다 문화가 너무 달라 여행하는 맛이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은가 보다.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노체 부에나(Nochebuena)’라고 부른다. 좋은 밤이란 뜻이다. 노체 부에나에는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고 뚜론(turrón) 같은 크리스마스 디저트를 먹는다고 한다. 그런 중요한 날에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오이아나가 고맙다. 게다가 집 근처 베이커리에서 포장해왔다며 크리스마스 디저트들을 준비해왔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려진 봉투에 빨간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는 포장상자를 받아 드니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기분이 난다.


카페나 빵집 쇼케이스에도 하얀 슈가 파우더가 눈처럼 내린 케이크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나는 오이아나를 위해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했다. 소박한 우리만의 파티가 끝나고 오이아나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가 된 나는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산탄데르(Santander)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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