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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Nov 17. 2021

떠나기도 전에 돌아오고 싶은 코르도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안달루시아는 우리가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플라멩코 춤과 그 의상이 발생한 지방이다. 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관광사진에 등장하는 세비야 성당, 스페인 광장이 있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코르도바 등이 유명한데 이번 여행에서는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코르도바, 세테닐을 가보기로 했다.



 거대한 부피의 짐은 알리칸테에서 공부하다 마드리드로 옮긴 H네 집에 며칠간만 맡겨놓기로 했다. H는 마드리드 생활이 어떻냐는 물음에 대도시인 만큼 어학원도 조금 더 다양하고 한국 음식을 파는 마트나 식당이 많아 생활하기도 편리하다며 도시를 옮긴 데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는 마드리드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래도 알리칸테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이 가장 잘한 결정이란 마음은 변함없었다.



마드리드에서 렌페를 타고 코르도바까지 왔다. 마지막 렌페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차에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차창밖에 지나치는 풍경들이 순간순간 소중하다. 8개월이 이렇게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빨리 흐를 줄은 몰랐다.



 역에서 내리니 이슬람 전통의 흔적이 많이 남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달루시아에 올 때면 아랍풍의 건축물과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여러 문화가 묘하게 섞인 그런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마드리드에 짐을 모두 두고 온 덕에 가벼운 몸으로 역에 내릴 수 있어 짐을 맡아준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마웠다.

 

코르도바 메스키타

 

 제일 먼저 코르도바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메스키타로 향했다. 이슬람 사원으로 세워진 건물을 가톨릭 성당으로 바꾼 탓에 건축 양식이 전통 성당과는 많이 다르다. 하얀 아치형 원주에 분홍색 줄무늬가 인상적이라 성당 이곳저곳에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규모가 꽤 큰데 곳곳에 가톨릭 성물과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혼합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조용하고 독특한 성당 중앙에 앉아 한국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왠지 이곳에서 하는 기도는 알라신까지 들어줄 것 같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 사이로 아랍식 견과류와 건과일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독특한 향신료와 물 담배도 함께 팔고 있다. 북부 여행을 할 때는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재밌다. 가는 곳마다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문화가 있는 것이 바로 스페인의 매력이다. 다음으로 코르도바에서 유명한 유대인 거리로 향했다. 하얀 벽에 화분이 걸려 있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 있다. 집집마다 빨간 꽃과 화분을 벽에 걸어 두었는데 별거 아닌 것 같은 조그만 꽃 화분이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로마인 다리로 가보기로 한다. 한 도시에 아랍과 유대인 그리고 로마인의 흔적까지 남아있다니 참 신기한 도시이다. 아까 봤던 건축물들과는 다르게 네모 반듯하고 웅장한 다리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 위에는 천사와 가톨릭 성인들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그 밑에 사람들의 기원을 담은 초가 불을 밝히고 있다. 카를교에서는 조각상의 발을 만지면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혹시 코르도바도 마찬가지일까 싶어 괜히 애꿎은 조각상의 발을 만져본다. 메스키아에서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이곳에서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코르도바는 떠나기도 전에 돌아올 생각을 하게 하는 도시다.


 다음날 시청 광장으로 가니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보니 분장을 한 사람들이 차례로 지나가는 카나발이 열리고 있었다. 20~30명씩 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변장을 하며 지나가는데 각 팀별로 콘셉트를 정해서 분장을 하고 포즈를 취하는 카나발 퍼레이드였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때 동네 성당별로 나와 성가 대회를 하는 것처럼 동네마다 지역주민들이 콘셉트를 잡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 같았다.


카나발

 스타워즈 시리즈 캐릭터로 분한 사람들도 있었고 인디언, 슈렉, 미식축구 선수, 중세시대 황제 등이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은 쇼맨십도 뛰어나서 다스베이더는 영화 속 대사를 외치며 아이들을 겁을 주기도 하고 황제는 거만한 걸음걸이로 호통을 치며 걸어 다녔다. 모두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된 듯 연기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보던 축제를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영상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본 축제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흥이 고스란히 전해져 좋았다.


 축제 중간에 다운증후군을 앓는 듯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손을 흔들며 동화 속 캐릭터같이 분장한 사람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팀이 등장했다. 소년은 정말 행복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돌아다녔다. 인사를 하는 소년도 즐거웠고 함께한 마을 사람들도 즐거워 보였으며 동화 속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는 관객도 행복했다. 간혹 분장이 미흡한 팀도 있었지만 수년간 지속되어온 축제의 경험으로 관중들을 쥐락펴락하며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 꼭 한 편의 마당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노인, 청년과 아기, 장애인이 모두 어우러져 함께 했다. 그 경험들이 오랜 시간 반복되며 쌓인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르도바는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도시였다. 로마와 아랍의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스민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축제도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쌓인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오늘 본 이 스페인에서의 광경이 내 역사에도 쌓여서 나를 만들 것이다. 내게 쌓인 스페인에서의 흔적들이 코르도바처럼 나를 매력적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마인 다리 근처에서는 밤의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부활절이나 가톨릭의 중요한 기념일에 밤에 화려하게 장식한 성모상이나 십자가를 앞에 세우고 관악대와 함께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가 전통적으로 열린다. 그라나다에서도 한번 행렬을 따라간 적이 있는데 화려하게 장식한 성모상을 올린 나무로 만든 가마 밑에 사람들이 들어가 가마를 끌고 도시를 돌았다. 맨 앞에서 십자가를 든 사람이 행렬을 이끌고 가마를 든 사람들 뒤에 관악대가 연주를 하며 따른다. 그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따라가며 밤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 가마를 끄는 예행연습을 이곳 로마인 다리 근처에서 하고 있었다.

로마인 다리

 

 역시 세월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로 특별한 장비 없이 모두가 티셔츠 하나를 허리에 대고 머리엔 띠를 두르고 무거운 가마를 끌며 몇 시간 동안 도시를 도는 것이다. 리더가 나무판자 위에 벽돌을 치며 신호를 하면 연령대도 다양한 남자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다시 한번 벽돌을 판자에 치면 가마를 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스페인 남자들이 군인처럼 각이 잡혀 무엇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곳에 온 뒤 처음이었다. 밤이 되자 거대한 성모상을 실은 가마 행렬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그 뒤를 성가를 부르며 따라갔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그들을 따랐다. 항상 느릿하게 걸어가며 여유 넘치던 스페인 남자들을 변하게 하는 전통이 무엇인지 신기했다. 그렇게 가마를 끄는 아빠 주위로 아이들이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아이도 자라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티셔츠를 허리에 받치고 가마를 끌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또 내가 이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퍼레이드 연습하는 스페인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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