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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Nov 10. 2021

헤로나 혹은 지로나

카탈루냐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두 번째 여행이라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보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묵던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라우라(Laura)에게 근교 여행에 대해 물으니 헤로나를 추천해주었다.


 “헤로나는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지역에 속하는 도시로 바르셀로나 동북쪽으로 99km 떨어져 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했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1492년 스페인에서 유태인의 개종, 또는 추방이 강제되기 이전까지 헤로나에는 유태인 공동체가 크게 발달했으며 잘 보존된 이들의 거주지 일부가 관광명소가 됐다.” 사전 설명으로는 그다지 매력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스페인어로는 헤로나(Gerona), 카탈루냐어로는 지로나(Girona)로 불리는 이곳은 지금이야 왕좌의 게임 촬영지이자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내가 스페인에 머물 당시만 해도 익숙한 관광지는 아니었다. 라우라가 알려준 대로 렌페(Renfe, 스페인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 헤로나 역에 도착했다.


  도시는 생각보다 작고 조용했는데 라우라에게 들었던 정보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이고 카탈루냐 지방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도시라는 정도였다. 조금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시내 중앙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헤로나 지도를 달라고 하는 나에게 직원은 친절하게도 그 지방의 관광명소를 지도에 직접 표시해주며 동선까지 표시해서 하루 여행 코스를 완성해주었다. 기분 좋은 인사와 함께 지도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집마다 창밖으로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지방의 깃발을 걸어놓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집이 창에 깃발을 걸어놓아서 나는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사람들에게 물으니 기념일이 아닌 보통날에도 항상 카탈루냐 깃발을 걸어놓는다고 했다. 내가 방문했던 그 당시에도 그곳 사람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었다.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고 독립에 대한 열망은 자못 비장해 보였다. 헤로나의 첫인상은 내가 스페인이 아니라 카탈루냐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이었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다른 스페인 지방보다 유독 추운 느낌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몸을 조금 녹이고 관광을 시작하기로 했다. 밖에 인테리어는 평범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프랑스 파리에 온 것처럼 꾸며져 있다. 벽에 그려진 에펠탑 아래에 앉아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참을 홀로 조용히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10대 청소년 무리가 카페로 들어온다. 조용하던 카페가 일순간 소란해진다. 여학생 3명에 남학생 2명이 음료를 시키고 그 나이 또래의 대화를 시작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며 고백을 했다 차인 남학생의 이야기 그리고 부모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밖으로 나와 근처에 보이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각 나라의 언어로 쓰인 어린 왕자를 모으는 것이 스페인에 가서 생긴 내 취미이다. 내용과 그림은 같은데 언어별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다른 것이 참 재미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을 꼭 산다. 카탈루냐에 왔으니 카탈루냐어로 된 어린 왕자도 구입하기 위해 서점에 갔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서점에 할머니 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셨다.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이곳에서 운영해온 듯한 느낌이 배어 나왔다. 직접 책을 큐레이션 해서 진열해놓았는데 사실 큐레이션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최근에 나온 책이나 유행하는 도서가 아닌 소박하게 할머니 나름대로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디스플레이해놓으신 것이다.


 한창 책 구 경을 하다 카탈루냐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이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는 카탈루냐어로 말을 하신다. 내가 카탈루냐어를 못한다고 하니 그럼 카탈루냐어로 된 책은 왜 사냐고 물으셨다.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그냥 공부를 하려고 산다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다시 함박웃음을 지으시고는 잘 생각했다며 외국인들도 카탈루냐어를 공부하면 좋을 것이라고 정말 좋아하셨다. 연신 내게 ‘카스티 야노(스페인 공용어, 마드리드 지방의 언어)’보다는 ‘카탈란(카탈루냐 지방의 언어)’를 공부하는 게 훨씬 재밌을 것이라며 거듭 당부를 하신다. 카탈란으로 쓰인 어린 왕자 책을 찾기 전까지는 아주 온화한 인상의 할머니셨는데 카탈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전투 열사로 변신하셨다.


 그날 마주쳤던 지로나 사람이 대부분 그랬다. 온화한 미소로 친절히 이야기하다가도 지역의 이야기만 나오면 호전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독립투표로 인한 갈등이 해외토픽에 거듭 방송될 때도 놀랍지 않았다. 당시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독립을 갈망했는지 단지 하루 여행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저리 가라 할 만큼 심각했다.



 할머니가 곱게 포장해주신 카탈란으로 적힌 어린 왕자책을 가방에 넣고 할머니께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읽어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본격적으로 관광에 나섰다. 여행안내소 직원 안내대로 우선 중세 지역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중심지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정말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웅장한 계단 끝에 큰 성당 하나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왔다던 대성당이다. 입구 벽면에는 가톨릭 성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입구만 통과해도 성인들의 가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성당 앞 계단에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보니 지로나 시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세의 왕이 된 것처럼 지로나가 발아래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한껏 느껴본다. 관광안내소의 안내대로 성당 주위의 성곽을 걷기로 했다. 중세시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조용한 성곽을 걷고 있으니 중세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떤 복장으로 걸었을까 궁금해졌다.

  성곽은 관광지처럼 세련되게 정비되어 있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깨진 부분은 보수되어 있지 않았고 잡초도 무성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그대로’ 두었기에 지금까지 이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둘레길을 걷듯 성곽을 산책하고 내려오니 대성당 근처에 또 다른 성당이 있다. 산펠리우 성당은 앞서 본 네모반듯한 대성당과는 다르게 뾰족 솟은 첨탑이 인상적이다.

 성당 근처 조그마한 사자상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사자상이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작은 새끼 사자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자상 아래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 사자상을 만지면 지로나에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단다.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렸다 사자상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여행지마다 쓰다듬으면 그 여행지로 돌아오는 조각상이 있는 것이 재밌다, 강변으로 나오니 강을 따라 노란색과 빨간색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중세시대 건물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강가에 서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강을 따라 쭉 걷는데 널어놓은 빨래마저도 동화 속에 나오는 삽화 같다. 여러 개의 다리가 지로나를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다리는 바로 에펠탑을 설계했다는 구스타보 에펠의 초기작이라는 에펠 다리다. 에펠탑 한 부분을 통째로 옮겨 놓은 것처럼 구조가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철제가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다른 유명 다리들이 관광객이 북적대며 사진을 찍는 예술품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이 다리는 실제 주민들이 강을 건널 때 이용하는 다리의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 그래서 수시로 현지인들이 지나다녔고 그래서 조금은 번잡스러웠지만 빨간색 철제 다리가 지나가는 주민들과 강가의 동화 같은 집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 더 걸어 내려오니 또 다른 다리에는 가판들이 늘어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해 질 녘 노을과 가판에 걸려있는 전구 조명이 어우러져 제법 분위기가 근사했다. 지로나를 스페인의 피렌체라고도 부른다던데 나는 그곳에서 해 질 녘 보았던 프라하의 카를교를 떠올렸다. 노을과 다리의 조명, 가톨릭 성인 조각상들 그리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어우러져 왠지 모르게 처연하고 아름다웠던 카를교가 떠올랐다. 다리 끝에 이르니 초등학생 또래 돼 보이는 어린이들이 모여 촛불을 켜놓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일학교 학생들 같았던 아이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와 지로나의 분위기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들었던 거리악사의 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떠올랐다.


 어두워지는 그 다리에 그렇게 서서 한참을 지로나에 취해 있다 바르셀로나에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신시가 쪽으로 돌아갔다.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는 중세 모습의 지로나와 공존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고층빌딩에 정장을 입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오후 동안 보았던 것이 지로나인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지로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배를 채우러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관광객이 갈 것 같지 않은 적당히 깔끔하고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니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메뉴 주문하기 곤란할 때는 역시 메뉴 델 디아이다. 저렴한 가격에 코스 요리로 샐러드와 후식까지 나온다. 맛도 적당하고 평범하다.


 만족스러운 주문이었다며 티브이를 보며 음식을 먹고 있는데 티브이 뉴스에서 한국 관련 뉴스가 나왔다. 지로나에서 하루 동안 중세 유럽과 동화마을, 피렌체와 프라하, 부다페스트서 서울까지 여러 나라를 왔다 갔다 하느라 긴 하루였다. 돌아오는 기차에 잠깐 들었던 꿈에서 예전에 갔던 부다페스트에 다시 가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다면 지로나에 한 번쯤 방문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탈루냐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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