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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16. 2022

혼자 왔냐고?

스페인에서는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이 없다.

엘체의 상징 조형물


 모처럼 약속 없이 홀로 보내게 된 주말이 심심해 가까운 도시 엘체(Elche)에 가기로 했다.

 이제는 정말 현지인처럼계획 없이도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익숙하다. 블라블라카(Blabla) 앱으로 타고  차를 예약하거나 아니면 구글맵으로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고 버스를 타고 떠나면 된다.

블로그로 애써 교통편이나 동선을 찾아보지 않고 훌쩍 갈 수 있는 것이 좋아 다시 한 번 스페인에서 살아보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엘체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인 식물원(Palm Groves (Palmeral) of Elche)으로 향했다. 외진 길에 더위까지 겹쳐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덥긴 하지만 사람 없는 깨끗한 거리에 기분이 좋아져 흥얼거리며 매표소를 찾는다.

식물원 가는 길


"어른 한 명이요."

"혼자 왔니?"

"응"

"혼자 왔다고? 왜? 여행 온 거야?"

"응, 이 근처 사는데 그냥 심심해서 한번 와봤어."

"혼자? 여길?"


  또래쯤  보이는 매표소 직원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혼자 왔냐는 질문을 연속해서 하더니  하나를 손에 쥐어줬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나는   없었고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직원을 뒤로하고 식물원으로 입장했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거리의 상태나 치안이 혼자 여행을 걱정할 만큼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고 혼자 다니다 거리에서 쓰러질 만큼의 더위도 아니었다. 식물원에 혼자 온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일까 싶었다.


 원래 서양인들은 독립적이지 않나? 한국에서야 혼자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있지만 요즘 한국에서도 혼밥 하는 사람들도 많고 영화관도 혼자 다니고 심지어 놀이공원에 혼자 가는 사람도 있는데 식물원에 혼자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하지만 확실히 혼자  식물원은 재미가 없었다. 원래도 식물원에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넓은 곳을 홀로 구경하려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없는 야자수와 선인장으로 조성된 식물원은 한번  와볼 만한 관광지였지만 큰 야자수로 가득한 공간에 압도되어 혼자 왔냐는 그말자꾸만 떠올랐다.


 정원 가운데 벤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공원 안에 풀어놓은 커다란 공작새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바람에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인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식물원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위엄을 떨치며 다가오는 공작새는 정말 공포였다. 이래서 혼자 온 나를 이상하게 여긴 걸까 싶어 매표소를 다시 보니 어느새 직원이 바뀌어 있다.

  

 또 다른 관광지인 마리아 성당(Basilica de Santa Maria) 종탑에 올라 더위에 올라오는 아지랑이를 바라보았다. 종탑에는 식물원과는 달리 관광객 서너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도 있고 근처 도시에서 온 듯 한 스페인 관광객도 보인다. 그들은 자연스레 혼자 온 나에게 단체사진을 부탁한다. 그렇지 않아도 종탑에서 차례로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느라 지쳤는데 사진까지 계속 찍어주려니 짜증이 살짝 몰려 온다. 부탁하는 사진을 다 찍어주고 난 후 인내심을 갖고 차례를 기다려 다시 그들에게 내 사진도 부탁해 찍어본다. 한껏 들떠 이 포즈 저 포즈 취하는 그들과 달리 나는 흥이 나지 않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더위에 비둘기도 지쳐 땅에 배를 깔고 분수 대 근처에 모여있다. 저 비둘기도 떼로 모여 있구나 싶다.

종탑에서 바라본 엘체
분수대에 모여있는 비둘기들


   매표소 직원의 말이 아니었으면 혼자 다닌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음식을 주문하거나 사진을 찍을  불편하긴 했어도 크게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둘이서 여행을  때도 여럿이서 여행을  때도 외로움은 찾아올  있는 감정이었다. 오히려 홀로 다니며 느꼈던 자유로움이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 다니는 것이 이곳에서도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조금 우울해졌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와 홀로 다닌다는 고독에 지쳐 관광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홀로 간 여행의 장점은 여행을 끝마치고 싶을 때 언제든 마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지의 근교에 살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다시 또 올 수 있기에 떠나는데 미련도 없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있던 버스가 방금 떠났단다. 하는 수 없이 정류장에 있는 카페에 가 맥주 한잔을 시켜서 목을 축였다. 아직 오후 2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창밖에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바라보려니 돌아가길 잘했다 싶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월요일 수업시간에 내 궁금증 해결사인 선생님 디에고에게 물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혼자 여행 안 다녀? 주말에 엘체에 갔는 데 나보고 혼자 왔는지 물었어."


"스페인에서는 보통 혼자 여행 다니지 않아.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은 친구가 없거나 가족이 없다고 생각해. 여행은 보통 친구나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일 때문이 아니면 보통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없어."


 그간 혼자 다니며 만났던 스페인 사람들은 항상 친절했고 묻지 않아도 도움을 주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씁쓸하게 했다. 생각해보니 가끔 관광지에 혼자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내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가족의 가치가 강한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명절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여행도 함께 다닌다. 그래서 인지 북유럽에 비해 여행지에서도 가족과 함께 다니는 여행객들을 많이   있었다.   바닷가에만 나가도 가족끼리 나와 모래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고 저녁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들도 보통 커플이거나 친구들과 함께한 일행이었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시끄럽고 유쾌한 모습이 타고난 인싸 같아 보였지만 그들 대부분무리에서 이탈해 혼자가 되면 소심하고 조용해졌다.



"그러면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여행도 못가는 거야?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그건 좀 이상한 것 같아.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친구들과 시간이 안 맞거나 하면 혼자 갈 수 있는거 아니야?"


"글쎄, 보통은 시간이 맞지 않으면 시간을 조정하거나 해서 계획을 세워. 그리고 혼자 여행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잘 없는 것 같아."


  내 지난 여행에 대해 항변하고 싶었다. 억울한 마음에 친절한 디에고에게 화풀이 하듯 짧은 스페인어로 혼자 다니는 여행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껏 혼자 간 스페인의 모든 곳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여럿이서 갔으면 느끼지 못 했을지 모른다고.  혼자 여행 예찬론자가 된 것 마냥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디에고도 역시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혼자 자위하는 결론을 내며 마무리 지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는 스페인 사람들은 바보라고. 하지만 그 다음 주말 여행은 약속을 맞추어 친구들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엘체는 그 이후로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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