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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25. 2022

사서가 본 전자책

지난 1월 있었던 인사이동으로 업무가 바뀌었다. 일하는 도서관도 바뀌었지만 업무 역시 일반자료실에서 대출반납 서비스 업무에서 전자자료실 담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깊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규모가 있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장점이다. 작은 규모의 도서관에서는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업무를 함께 분담에서 하기도 하고 1인 사서로 운영되는 도서관은 사서 혼자 운영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도서관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고 이용자의 반응이 직접적으로 체감된다는 것이 작은 도서관의 장점이라면 한 분야의 업무를 깊숙이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서관의 장점이다.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수서나 전산과 같은 한 가지 업무를 십여 년 넘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그 사람은 그 분야에 있어서 스페셜리스트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주기적으로 인사철마다 업무가 바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가지 업무를 집중적으로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찌 되었건 전자자료실을 담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전자책, DB, DVD 등을 주로 다루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전자책의 부상은 해묵은 화두이다. 1999년 북토피아가 설립된 이후 출판산업과 도서관 분야에 전자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한 지 벌써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전자책에 대한 수요가 그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전자책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활동이 제한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전자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코로나를 국면으로 더욱 발전한 것처럼 도서관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전자책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요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생활을 제공하도록 장려했고 도서관은 이에 맞춰 전자책 구매 예산을 늘렸다.


실제로 우리 도서관에서도 코로나를 전후로 전자책에 대한 문의와 이용률이 현격하게 늘어났다. 고집스럽게 종이책을 고수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전자책을 접하게 되면서 전자책 애독자가 되기도 했다. 책과 도서관이랑은 전혀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집에서 보내는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방문 없이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있는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도 전자책을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했다. 출간하는 데 돈이 크게 들지 않고 초기 비용도 크게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재고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여러 업체에서 다량으로  전자책을 출간하고 있지만 문제는 플랫폼이 각기 제각각이라 한 곳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정 단말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책도 있고 웹페이지나 모바일로 볼 수 있는 책들도 각기 앱을 설치해 따로 보아야 한다. 


도서관에서는 다수를 위해 당연히 지정 단말기 방식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웹상에서 볼 수 있는 전자책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각 업체별로 DRM이 달라한 곳에서 통합해서 제공하기가 사실 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책이 A, B, C 업체로 나누어져 있다면 이 세 곳에서 각기 계약을 맺어 책을 구입해야 한다. 플랫폼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이 공급 업체들과도 협의를 하고 기술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이를 통합해보려 여러 시도들을 해왔고 조금은 정리된 듯하다.


구독형으로 구매할 것인가 소장형으로 구매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종이책은 그냥 구입하면 그걸로 끝났다. 유효기한 없이 한번 구매로 영원히 도서관 자산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책은 다르다. 기간을 정해 볼 수 있도록 할 것인지(구독형), 종이책처럼 도서관 자산으로 둘 수 있을 것인지(소장형)도 중요한 문제다. 이에 따라 도서관 장서 통계도 조금 더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구입한 책의 권수로 통계를 내면 되었지만 이제 영원히 자산으로 잡을 수 없는 형태의 자산이 등장한 것이다. 작년 통계에는 소장 책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구독기간이 끝나면 그 책은 다시 통계에서 빠지게 된다.


이러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은 여전히 도서관의 주요한 화두이다. 점점 종이책과 비교한 도서구입 예산도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전자책의 인기는 식지 않을 듯하다. 기술 발전에 발맞춰 따라가는 것도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이므로 오늘도 여전히 머리가 아프지만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 담당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취향은 여전히 종이책이다. 종이책이 주는 책을 넘기는 소리, 종이가 주는 그 질감과 가독성 그리고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보며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종이책의 매력이다. 휴대가 편하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값이 저렴한 전자책이 더 취향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어린 세대는 종이보다 영상을 먼저 접한 세대라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읽는데 더 익숙하다고 한다. 


 10여 년 전 어딘가에서 이렇게 전자책 시장이 커지다가는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기사들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두 개가 각각 따로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두 개는 각기 다른 매체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대체재가 될 수 없다. 전자책으로 넘어간 독자들이 종이책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특장점이 너무 달라 상황에 따라 알맞게 골라보면 된다. 각자의 선호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니 도서관에서는 종이책도 제공해야 하고 전자책도 제공해야 한다.  넷플릭스 같은 OTT도 제공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도서관이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닌지는 벌써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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