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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07. 2022

아무튼, 스페인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어찌보면 사소한 본인 만의 취향에 대해 가볍게 혹은 진지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글들을 보면 다른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그들만의 취향이 꼭 나와도 닮은 것 같아 공감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가 된다면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해봤다. 물론 의뢰따윈 들어오지 않겠지만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주제의 글이 좋을까 생각했다.


아무튼 시리즈는 이유없이 좋은 자신만의 취향에 대해 고백하는 에세이가 아닌가.

내가 이유없이 그저 생각만해도 좋고 집착하게 되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보고 싶은 영화를 틀어놓고 침대 위에서 마시는 한잔의 맥주, 어른들을 감동시키는 동화책, 어린왕자, 처음가는 여행지에 막 내렸을 때의 공항 그리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과 기념품들. 여러가지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이건 특별할 만한 취향도 아니고 스페인이 가기 힘든 나라이거나 정보를 접하기 힘든 나라도 아니다. 나보다 스페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이미 넘치고 시중에 나온 스페인 관련된 책도 많다. 하지만 내가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스페인이다. 아무튼 시리즈가 누가 뭐래도 좋은 나만의 취향에 대해 쓰는 것이라면 말이다.



 스페인이 왜 좋은지 생각해봤다. 사실 이 나라와 내 경력이나 이력과 관련된 접점은 하나도 없고 솔직히 말해 나는 외국어 중에서 스페인어 발음보다는 불어 발음을 더 좋아한다. 근데 왜 스페인이 좋을까 더위도 싫어하고 목소리 큰 사람도 싫어하는데. 게다가 첫 스페인 여행지에서는 소매치기를 만나 가방을 통째로 털릴 뻔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어디서 스페인 이야기만 나오면 반갑고 아는 척을 하고 싶다. 나랑 스페인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제일 좋고 스페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면 뭐라도 하나 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페인에 대해 호감을 보인다. 바르셀로나에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좋았다는 사람도 있고 음식이 맛있었다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풀어낼 때면 내 추억 속 스페인을 다시 꺼내보고 그 시절 추억에 다시 빠져들고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그럴때면 나는 희한하게도 몇년 이나 지난 그 시절의 그 느낌, 온도, 습도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알리칸테 바다의 냄새, 습도 그리고 히로나 비오는 거리의 그 축축함 이 모든 것이 타임루프라도 한것 마냥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희한한 일이다. 많은 나라에 여행을 다녀봤지만 길게 머무는 것이 처음이어서일까 유독 스페인만  그렇다.


 그래서 스페인이 좋다. 그 시절의 나는 자유로웠고 누구보다 여유로웠다. 손미나 아나운서가 쓴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는 책을 읽어본적은 없지만 그 제목만은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스페인을 떠올리면 자유가 떠오른다.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떠올라서 인지, 일년 내내 따스한 기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내 추억 속 스페인은 항상 따가운 태양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바닷가 근처의 레스토랑 그늘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시켜놓고 해변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기온은 40도를 육박하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고 시켜놓은 맥주 잔은 금새 물방울이 맺혀 미지근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떠오른다.


 스페인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다 근처 바에서 음료 한잔만 시켜놓고 2시간이건 3시간이건 노을이 질 때까지 앉아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고 다음날 출근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쩌면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 조차 잊혀진 듯 했다. 어떤 풍경화 속의 조그만한 점이 되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 풍경의 일부가 된 그 느낌이.


  내일의 할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취향에 맞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보고 사고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카맣게 탄 피부도 부끄럽지 않았고 5천원 주고 산 티셔츠를 목이 늘어지게 입고 다니는 것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여행자라서 가능한 여유였겠지만 그 나라가 스페인이어서 그 여유는 더 배가 되었다.


 꼭 스페인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여유였지만 스페인에서여서 더 행복했다. 그림 속 점이 되어 존재가 잊혀외로움이 느껴질 만하면 옆에 있던 또 다른 등장인물이 말을 걸어왔다. 스피커에 들리는 음악이 궁금해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 냅킨에 노래 제목을 적어주기도 하고 처음 보는 음식을 어떻게 먹을 줄 몰라 헤메고 있으면 맛있게 먹는 팁을 참견했다. 그 애정가득한 참견이 귀찮지 않고 고마웠다. 일행과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오지랖이 싫지 않았다.


 가는 곳 마다 다른 풍경과 문화도 나를 설레게 했다. 쉽게 싫증을 잘내고 지겨워하는 내 성미에도 꼭 맞았다. 가는 곳 마다 너무 다른 문화와 풍경이 나를 지겹지 않게 했다. 게다가 언어까지 다르다. 이렇게 다른 나라가 하나로 묶여 스페인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어느 도시 하나 고르기가 힘들 정도로 매력있었다. 지중해를 볼 수 있는 동쪽도 좋았고 프랑스와 인접해 음식이 맛있고 순례길로 유명한 북쪽도 매력있었다. 아프리카와 인접해 아랍의 영향이 큰 스페인 남부도 또 다른 모습이다. 지겨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튼 긴 휴가가 생긴다면 다시 또 나는 스페인에 가고 싶다.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냐고 물어도 아무튼 스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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