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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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여러 과목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런데 유독 '수학'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마주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방금 풀어본 문제라 하더라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한 번쯤 경험해보셨을 거예요. 꼭 시험을 볼 때 풀이가 생각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제출한 뒤에 해법이 생각나지요.
이와 같은 수학으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정 상태를 '수학 불안'으로 정의합니다. 수학 불안은 수학교육 학자들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주제이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불안'이나 '과학 불안'과 같은 단어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수학 학습이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
지식의 저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과거에 능숙하게 익힌 기술을 설명하면서,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수학을 가르칠 때 많이 나타납니다. 저는 최근 모 방송에서 어떤 분이 한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분은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수포자'이며, 이 학생들이 왜 수학을 못하고 싫어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을 잘했던 분이 방송에 나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포자'라는 단어를 남발하면서 수학 교육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수학을 학생들도 쉽게 배울 것이라고 착각하고 어려운 수학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수포자'라는 용어 때문에 아이들의 자존감은 많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수포자'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수포자로 낙인찍지 않습니다. 서점에 가서 수학 교육을 다룬 책들의 제목을 보십시오. '수포자'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 있을 겁니다. 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씁쓸한 단어를 좋아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순수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포자' 프레임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수학의 저주'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수학교육 문제를 풀 탈출구가 어디 있는지,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가득 실은 수학 배가 이미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분명한 힌트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수포자'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포자'라는 말이 오가는 삭막한 수학교실, 빈틈없는 수식과 답만이 존재하는 차가운 수학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시행착오와 모험, 실수나 실패가 허용되는 수학하기(Doing Math)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누구나 수학을 탐구하고 음미하는 아름다운 수학 생태계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