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화자 Sep 20. 2019

When we were young

2주 뒤면 공식적으로 서울을 탈출하게 되는데 와이프는 서울 탈출로는 뭔가 뜨뜻미지근했던 것인지 당분간 한국을 탈출하게 되었다. 물론 일 때문에. 그래서 지금 쓰는 노트북을 와이프에게 양도하고 하나 더 사야 하는 상황. 난 꽤나 전자제품을 좋아하고 부품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 피곤한 성격이라 오늘도 구글링을 하며 노트북 사양을 검색하고 있었다. 한글로 된 컨텐츠가 많지 않아 서양 덕후 형들 포럼을 뒤지는데 아 글쎄 영어 문장들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닌가. 인내를 갖고 꾸역꾸역 몇 페이지를 찾아보다 창을 닫고 말았다. 해외영업에서 손 뗀 지 얼마나 됐다고 영어 텍스트를 읽는 게 귀찮아진 것이다. 인턴까지 포함하면 대략 6년여를 영어로 메일을 쓰고, 읽고, 기사나 자료들을 읽는 게 나의 일이었는데. 이젠 영어 텍스트를 읽어내는 게 큰 ‘일’이 되어버렸다.
 
부모님 집 책장 서랍 귀퉁이에서 훈련소에서 썼던 수첩이 나왔다. 글씨는 온통 번지고 종이의 색이 바래져 있어 흡사 한국 전쟁 시절의 유물처럼 보였다. 셈을 해보니 군대에 입대한 게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12년 전이면 종이가 이렇게 바랄 만도 하지 싶었다. 남들 다 가는 군대가 얼마나 싫었고, 고통스러웠던 것인지 온통 나를 다잡는 글귀들 천지였다. 얼마나 지금의 와이프를 좋아했던 것인지 사귀지도 않던 와이프의 이니셜도 적혀 있었다. Each of + 단수명사라는 메모는 어디서 보고 적었던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생각하며 정치학을 공부한답시고 깝죽거렸고, 사회 문제, 정치 문제에 일일이 비분강개했던 나는 이제 그런 뉴스들에 관심보다는 피로감이 먼저 앞선다. 빌보드 팝부터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제3세계 음악까지 일일이 찾아 듣고, 회현역 지하상가에서 몇 시간씩 먼지 묻은 중고 시디를 뒤지던 나는 어딜 가고, 지니 어플을 켜고 1위부터 100위까지 랜덤 재생을 돌린다. 아니 요새는 그마저도 귀찮아 팟캐스트만 듣는다. 한 달에 십 수권의 책을 읽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가끔 서점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는데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마저도 생활의 피로와 게으름에 밀려 책상 위의 장식품에 지나질 않게 되었다.
 
낭만이 서린 기대와 관심이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통장 잔고는 내 인생의 어느 순간들보다 풍족하지만 이제 그다지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이십 대 때 돈이 생기면 꼭 봐야지 마음먹었던 비싼 공연들도 이제 맘껏 볼 수 있는데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음악과 책, 영화가 내 인생의 전부라며 떠들어댔던 나는 그냥 가장 보통의 아저씨가 되었구나.

태연이 비긴 어게인에 나와 When we were young을 부르더라. 그냥 When we were young이란 제목을 본 순간부터 뭔가 먹먹해지더니 기어이 눈물이 핑 돌았다. 20대 때의 순수함도 그립고 찌질했던 나도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위 도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