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온 지 벌써 한 달이 돼가고 있다. 이사는 언제나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래 봐야 자취생의 원룸 이사였기 때문에 하루 반나절 이사하고 정리하고 나면 끝났지만 이번엔 달랐다. 10월 2일. 내가 이사하던 날엔 태풍이 몰아쳤더랬다. 이사할 때 비가 오면 잘 산다던데 얼마나 더 잘 살려고 태풍까지 우릴 반기나.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가구를 때려 부셨고, 군산에 도착하니 비바람은 몰아쳤다. 그날 나는 여느 때보다 꿀맛 같은 깊은 잠을 잤다.
10월 8일 아내가 중국으로 떠났다. 퇴사와 비슷한 시기에 좋은 제안을 받았는데 우린, 아니 나는 고심 끝에 아내를 보내주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우린 올해 이사를 하고 난 뒤 2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근데 너무 좋은 기회라 아내의 커리어와 우리 2세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큰 결심을! 집은 2배 넘게 커져버렸는데 아내가 없어져 맘이 더 휑했지만 사람이 간사한 게 이것도 적응이 되더라. 중국에서 정신없이 바쁜 마누라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회사도 이사를 했다. 사장님 a.k.a 아버지가 15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셨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자리 잡았다. 논을 메꾸고, 콘크리트를 치고, 철골이 올라가고, 패널을 덮고 처음부터 새 공장이 지어지는 과정을 다 봤더니 감회가 더 새롭다. 사장님은 20여 년동안 세 살이를 하시고 처음 갖는 '내 공장'이라고 하셨다.
공장이 다 지어지고 2주 동안 공장 이사를 했다. 나와 인부 한 명이 공장에 잔뜩 쌓여있던 자재와 공구, 설비들을 날랐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군 시절 겪었던 진지공사가 생각난다. 새벽밥을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흙과 돌을 날랐고 산에 난 야생 잔디를 떼다가 포상에 옮겨 심었다.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프고만 싶었다. 작업에서 열외 될 적당한 수준으로 다치고만 싶었다. 공장 이사를 하며 난 딱 그 심정이었다. 온몸의 근육통과 요통을 버텨냈더니 그래도 끝나긴 끝나더라.
어젠 새로 이전한 공장으로 첫 출근이었다. 사무실도 쾌적하고 모든 게 새 것이고 깨끗하고 밝았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사장님, 아니 아버지는 얼마나 뿌듯하고 좋으실까. 그런 걸 전혀 내색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아마 그럴 게다. 밥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목을 돌려가며 공장을 돌아보는 시선에서 당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내가 해야 될 모든 이사가 끝났다. 이제 정착과 계발의 시간이다. 이사가 끝나면 하겠다는 핑계도 더 이상은 naver. 캐드도 배워야 하고, 민망하지만 브런치 글도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