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니까 당연히 올 한 해 나는 뭘 했나 뒤돌아 보게 됩니다. 무엇을 이루었고, 얼마나 성장했는가, 무엇이 변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곱씹어 봅니다. 뭐 딱히 곱씹을 필요도 없이 올해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한 한 해였습니다. 10년여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군산으로 이사를 했고, 회사에서도 나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누나 매장 인테리어 공사를 도왔고, 아버지 회사 공장과 사무실을 새로 지었습니다.
너무 큰 변화가 많아 올해 초의 기억이 아득합니다. 4월엔 아내와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왔고, 퇴사 즈음엔 벼르고 벼르던 홍콩 여행을 다녀왔는데 2~3년 전 기억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결정의 연속이 계속 돼 스트레스가 많을 법도 했지만 새로운 일은 그걸 모두 압도할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잘 해냈는지도 모릅니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글을 쓰고자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브런치 어플에 접속했던 게 수십 차례. '뭐라도 쓰는 삶을 살겠다'라고 거창하게 적어놓았지만 그 '뭐'가 너무 사소한 것 같아 창을 닫고,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뒤적이는 채로 몇 개월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올 한 해만큼은 정말 뭐라도 쓰고, 꾸준히 쓰겠다고 몇몇 사람들에게 공언했는데 너무다 당연히 저는 그 약속을 올해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한 줄이라도 적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 올해도 꾸준히 쓰겠다는 그 마음가짐을 밀린 방학숙제처럼 내년의 목표로 미뤄둬 봅니다. 방학숙제는 언젠간 하기 마련이니 언젠가는 꾸준히 쓰는 날이 오긴 오겠죠.
이십 대 때는 뭐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인생은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문세의 노래 중엔 '알 수 없는 인생'이란 노래가 있는데 짧은 전주가 끝나면 이문세는 노래합니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대학에 다닐 때 흘려들은 조교 누나(라고 쓰지만 40대에 가정이 있던)의 컬러링이 10년 뒤에 이렇게 뼈에 사무치는 깨달음을 줄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저는 인생은 모르겠습니다. (부끄럽지만) 공부와 연구를 하고 싶다고 떠들던 제가 취업을 하더니 이제는 해외영업과 동떨어진 플랜트 산업 현장에 와있습니다. 이쯤 되니 되레 겁을 먹거나, 기대를 하며 김칫국을 마시는 그 일들이 얼마나 의미 없고 하찮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인생을 살아갈수록 명확해지는 것은 노력하는 사람과 성실한 사람은 언젠가는 그 결실을 본다는 것입니다. 고리타분하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집 앞 카페에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쓰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득참을 느낍니다. 지구력이 얼마 되지 않을 의욕도 샘솟습니다.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그래도 끈을 놓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대로 해볼랍니다. 꾸준하게 노력하면 뭐라도 된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오랜만에 오그라드는 글이지만 올 한 해 저는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