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름으로 그대를 사랑하노니
아슴푸레한 새벽빛과 달큰한 냄새와 뒤섞이는 소리들은 꿈처럼 아롱지게 들렸다. 한참을 듣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찌된 일인가. 차 한 잔도 못 끓여 마시는 남자가 싱크대 앞에 서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짝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있다. 해는 분명히 떠오르고 있는데 오늘은 서쪽에서 뜨고 있는 것인가. 남자는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생일 축하해!”
강산도 몇 번 변하더니, 이제 사람도 변하는 것일까. 물론,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지지해주는 그 남자이지만 집안일은 항상 내 몫이었기에 오늘 같은 일은 꿈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이다. 그래서 참, 고마운 일이 또 하나 생겼다.
그대의 이름은 남편, 그대는 어느 별에서 왔던가.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는 다 구겨진 양복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얼굴엔 여드름의 흉터와 붉은 기운들이 얼룩덜룩 하였는데 함께 어울린(?) 빨간 체크무늬 모직코트는 말 그대로 촌놈 보다 더한 형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었고 때로는 수줍게 웃기도 했었다. 그 특유의 장난기는 ‘너무 재미있다’의 도를 넘어서 닭살의 경지였다. 대체 이 남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만나 본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게는 외계인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커피숍에서 만나서 의례적인 밥집이 아니라, 우리는 술을 한잔 하러 갔다. 아마도 나는 한번 만나고 안 만날 생각으로 예쁜 척도 안했을 뿐더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술을 퍼마실 생각이었던 모양이리라.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직업적인 일 이외에는 늘상 땅만 쳐다보고 살았기에 좀 서늘하면서도 제멋대로인 여자였다. 생의 한가운데도 아니고 생의 뒤안길도 아닌, 네 것도 내 것도 없는 방종 그 자체였다. 나는 늘 죽고 싶었다. 그렇게 세월을 낭비하고 서른이 되면 전혜린처럼 죽어 버리리라. 아직은 스물아홉이라 죽지도 못하고 있던 날들, 엄마의 시도 때도 없는 잔소리 때문에 결국 선을 보러 나갔다. 그리하여 그날은 선을 대강대강 보리라고 작심을 하고 나갔던 자리였던 게다.
그런데 아뿔싸! 그 외계인 같은 남자가 그날 이후로 회사에서 퇴근만하면 자유로를 타고 서쪽 끝에서 에덴의 동쪽으로 퇴근을 했다. 우스꽝스러운 보라색 자동차를 타고 구겨진 바지를 입고 빨간색 옷, 노란색 옷, 등등의 깜짝깜짝 놀란 만한 스타일로 한걸음에 달려와서는 커피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찐득찐득한 농담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순간, 그의 지갑에서 신분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주워서 그의 신분증을 들여다보았다. 오~ 마이 갓! ‘곽씨 ’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성씨는 곽씨가 아니라 ‘박씨’였다. 이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그의 이름도 정확히 몰랐던 거다.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도도하기가 얼음보다 더 차가웠던 내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리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바에는 결혼은 해보고 죽어야지! 생의 목적도 없고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니 책임감은 말해서 무엇 하리오. 선을 보고 사개월만에 결혼이라는 것을 덜컥 해치웠다. 결혼을 하고도 나는 계속 문제아였다. 살아보고 혼인 신고를 하겠다고 떼를 쓰지 않나, 애를 못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를 않나,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남편이 고맙다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참말로 철딱서니 없고 그야말로 대책 없는 아내였다.
1년 후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건강했다. 축복이란 바로 그런 것일까. 나도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아이와의 첫 대면, 그 느낌은 그동안의 모든 과정을 잊을 만큼 완전한 행복이었다. 세상의 어떤 보석인들 그만큼의 든든함과 희망을 줄 수 있으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세상을 만들어야할 막중한 책임과 모성이 비로소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아이와 더불어 다시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에게 엄격하리만치 규칙적으로 살았다. 하찮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카르마의 일관됨은 누구를 위한 헌신도 아니며 오직 자기 자신에게 신뢰를 만드는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알게 했다.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오랜 세월 무지했던 삶에서 벗어나는 길, 공부를 하는 길은 아이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가교였다. 교육의 힘은 위여하다. 콤플렉스가 누구보다도 많았던 나였지만 그 콤플렉스를 평온하게 순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들 속에서 남편은 늘 그 자리에(?),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와 나를 지켜주었다(?). 서서히 삶의 주인은 나라는 영혼의 울림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하여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지금까지 그와 내가 부부로 살고 있다.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던 부부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신비한 인생이다.
부부로 살다보면 가면이 진실인지, 진실이 가면인지 헷갈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기쁠 때도 있고, 함께한 시간 앞에서 측은지심이 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지루한 일상의 권태가 스며들면 크게 싸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부라는 이름이 족쇄처럼 여겨지면서 순간, 연애 감정을 그리워할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도리는 분명 이성적이어서 정서와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자신의 자리에서 의무를 지키고 책임을 지며 서로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고 싶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그대는 남편, 나는 아내의 자리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길을 모색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더 욕심내지 않고도 우리는 계속 기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대의 이름은 남편, 아내의 이름으로 그대를 사랑하노니! 오늘, 그대가 끓여준 미역국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맛나게 먹은 미역국으로 기억되리라.
2022년 6월 씀
추신) 초여름 6월에 쓴 글입니다. 저는 장미가 피는 계절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일까요. 장미를 참 좋아합니다. 친구들도 장미가 필때쯤이면 제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고요.ㅎ 갑자기 겨울이 오는 것 같아서,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얼른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