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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Oct 28. 2022

목욕하는 여인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목욕하는 여인들 (Le bagnanti) 1853년, Gustave Courbet, Musée Fabre, Montppellier



바쁜 손놀림으로 자료를 뒤적거리며 찾다가 그림 하나와 마주친다. 하아! 우연하게 내 눈에 걸려든 그림이 통렬하고도 유쾌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책장에 기대어 앉아서 그림을 들여다본다. 쿠르베의 사실주의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 이다. 나뭇가지에 옷가지를 걸쳐 놓고 목욕을 하려고 준비 중인지 아니면 목욕을 끝내고 개울가를 나오는 모습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다만, 옷가지를 살짝 두른 여인의 뒷모습만이 그림의 중앙에서 모든 것을 압도하도록 풍부하다.


어디서 보았더라? 여인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다. 저 언저리에 가닿은 어린 날의 기억 하나를 퍼 올린다. 엄마를 따라서 대중목욕탕에 가면 이해되지 않는 모습들이 있었다. 엄마를 비롯하여 아줌마들의 뒷모습은 그림속의 여인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풍부해서 어린 나를 휘둥그레지게 했었다. 왜 엄마들은 엉덩이가 저렇게 클까, 그것은 의문이었고 내가 커서 아줌마가 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실체를 보고도 이해되지 않는 형상으로만 이식되던 어린 나의 소망은 이다음에 커서 아줌마가 되더라도 저렇게 큰 엉덩이는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 이었으리라. 그 ‘어린 나’ 가 세월을 훌쩍 건너와 지금 ‘아줌마’ 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림속의 여인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인 것이다. 반백살 넘어선 아줌마는 그래서 이 그림이 더 반갑고 유쾌하다.


그림을 찬찬히 더 들여다보자. 손바닥을 펼쳐드는 그녀들의 몸짓은 가뿐하다. 하여, 풍부함이 여유로움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숲속에서 목욕을 할지라도 긴장하지 않는 여유로움은 아줌마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온열 아니던가. 그녀들에게서 우리네 보통 아줌마들의 모습을 본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몸이 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를 낳고도 날씬한 그녀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중목욕탕에 가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풍부한 모습들이 더 많다.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물론 몸매관리에 올인 하는 아줌마도 많지만 대다수의 아줌마는 저런 모습이 정상이다. 특별히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버릴 정도의 혐오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날씬해져야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고 쿠르베가 나를 흡족하게 합리화 시켜주고 있다.


날씬하지 않다고 당신의 그가 투덜대며 사랑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멀리 보내 버릴 일이다. 좀 안 생겼어도 고상하고 순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밤, 쿠르베의 그림 한 장으로 하루의 피로가 화악 날아가는 밤이다.



https://youtube.com/watch?v=hiFcc2E4l0I&feature=share






추신)  딸아이가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에 다시 집에 들어와서 빨간옷 갈아 입고 ‘고연전 농구응원하러 갔다. 가기 전에 이렇게 예쁜 꽃다발을 사다 놓고 나갔다. 일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웠을까. 그녀의 마음이  예뻐서 눈물이 난다. 사는 일이 허무의  깊은 바닥으로 쳐박히는 순간에도 나를 깨우는 , 언제나 그녀였다. 사랑한다,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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